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서해 공무원 이모씨 피살 사건’으로 기소된 서훈·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고발토록 지시한 사실이 국정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두 전직 국정원장이 사건 은폐를 위해 삭제했다고 검찰이 기소한 첩보 보고서 원본과 사본도 국정원에 그대로 있다고 한다. 둘 다 사건의 진실과 수사 배경에 의문을 키우는 충격적인 결과다.
국회 정보위원회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간사는 지난 2일 “2022년 7월 김규현 당시 국정원장이 윤 전 대통령에게 사건 조사 후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했지만, 국정원이 직접 고발하라는 윤 전 대통령 지시 후 국정원이 두 전직 국정원장을 고발했다”고 밝혔다. 대선 후보 때부터 이 사건을 문제 삼더니 집권하자마자 전 정부 결론을 뒤집고, 근거도 없이 두 전직 국정원장 수사를 지시해 치졸한 정치 보복을 했다는 것이 국정원 감사로 확인된 셈이다.
지난해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에 ‘테러 가능성’을 시사한 국정원 입장을 파견 검사인 김상민 법률특보가 반대했다는 내용도 감사로 알려졌다. 김 특보가 “테러 지정은 실익이 없다”며 ‘커터칼 미수 사건’으로 규정했단 것이다. 또 이재명 대통령이 기소된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 국정원이 이 대통령에 유리한 자료는 검찰에 제출하지 않은 정황도 포착됐다. 쌍방울 측이 대북사업을 빌미로 주가조작을 시도한 첩보 문건 등이 감사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국정원의 ‘선택적’ 자료 제공은 국내 정치 개입 정황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국정원 개혁의 핵심 줄기였던 ‘국내 정치 개입 금지’가 뿌리째 흔들린 꼴이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국내 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던 국정원을 수사로 단죄했던 이가 윤석열이다.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한 윤석열이 오히려 국정원을 정쟁에 끌어들여 정권 유지에 이용한 것이 이번 감사에서 확인됐다. 윤석열은 12·3 내란 때 국정원을 헌정 유린의 도구로 활용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윤석열 정부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을 낱낱이 밝히고 단죄하는 것이 국가정보기관 개혁, 내란 종식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2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정보위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