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올해로 44번째 시즌 중
아웃 1개도 못 잡고 사라진 투수 8명
노력과 근성 부족 때문이 아닐 것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마운드는 고독한 자리다. 경험이 부족한 신인급 투수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야구 규칙상 마운드의 높이는 10인치, 약 25.4㎝지만 그라운드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
타석에는 상대 4번 타자가 서 있다. 젊은 패기를 담아 힘있게 초구로 강속구를 던져봤지만 살짝 빠졌다. 2볼-0스트라이크로 몰리고,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큰 것 맞지 않으려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노렸지만 또 살짝 빠진다. 자신도 모르게 더그아웃을 슬쩍 쳐다봤다. 투수코치와 감독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 같다. “맞아도 좋으니 자신 있게 가운데로 던져”라는 응원은 사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볼넷으로 내보낸 뒤 투수코치가 올라온다. 여기서 나오는 결정적 질문.
“너, 왜 그래?”
새가슴 투수 확정이다. 많은 투수들이 그렇게 사라진다.
KBO리그는 올해로 44번째 시즌을 치르는 중이다. 1군 마운드에 올랐지만, 아웃카운트 1개도 잡지 못하고 사라진 투수가 8명이다. 롯데 투수 박효순은 2001년 1군 경기에 등판해 네 타자를 상대해 안타 3개, 볼넷 1개를 내주고 강판됐다. 박효순은 그해 퓨처스(2군)리그 다승왕(7승)이었지만 1군 기록은 0이닝 4자책, 3실점이 전부다. 1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KT 투수 한승지는 2020년 단 한 번의 등판에서 여섯 타자에게 안타 4개, 볼넷 1개, 몸에 맞는 공 1개를 허용했다. 해태 타이거즈 투수 정동해는 1989년 두 번 등판했다. 네 타자를 만나 모두 볼넷을 내줬다. 이들 모두 1군 통산 성적은 0이닝, 평균자책(방어율)은 ‘무한대’다.
노력과 의지가 부족했을까. 게을러서 훈련을 덜했거나, 승리와 성공에 대한 의지가 부족해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혹은 ‘근성’이 모자라서일까.
책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르면 노력과 의지는 사후 설명에 불과하다. 노력과 의지를 강조함으로써 성공과 실패의 원인과 이유를 모두 개인에게 지우는 ‘프레임’이다. 그래서 새가슴 역시 ‘깡’으로 불리는 근성이나 의지, 노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 대한 적응력, 위기를 극복하는 노하우가 쌓이지 않았을 뿐이다. 거기에 더해지는 한마디 강력한 질문.
“너, 왜 그래?”
여전히 위계가 강력한 한국 사회에서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다. “죄송합니다.” 질문을 가장한 비난에 사과로 답하는 구조에서 성장은 이뤄지기 어렵다. 능력주의와 승자독식주의가 당연히 여겨지는 한국 야구의 문제이자, 한국 사회의 문제다.
메이저리그 통산 35승을 거둔 더스틴 맥고완은 현재 플로리다고등학교 야구감독이다. 맥고완은 최근 디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 전설적 투수 로이 할러데이와의 일화를 전했다.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에 할러데이가 등판했고, 신인 내야수가 한 이닝에 실책을 3번이나 하면서 결국 10점이나 내줬다.
맥고완이 물었다. “이런 상황이면 투수로서 짜증 나지 않아?”
할러데이가 답했다. “자, 점수판이 없는 야구장이라고 생각해봐. 네 아버지와 아들이 야구장에 조금 늦게 왔는데, 사실은 이미 10점을 준 상황이야. 그때 10점 준 투수처럼 던지면 안 돼. 그때도 0-0인 것처럼 보여야 하는 거야. 점수는 상관없어. 언제나 0-0처럼 던지는 게 답이야.”
그 말은 맥고완에게 ‘좌우명’이 됐다. 맥고완은 2007년 콜로라도전에서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했고, 9회 안타를 맞았다. 맥고완은 “그때도, ‘아 노히트 놓쳤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0-0인 것처럼 던졌고, 승리 투수가 됐다.
지금 실패했다고 여겨진다면, 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된다면, 나는 노력과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느껴진다면 할러데이의 말을 기억하면 된다. 지금은 0-0이고, 요기 베라는 언제나 옳다. 야구는 끝나지 않았다. ‘언제나 0-0처럼’의 태도가 답답한 한국 사회 현실의 중력에서 탈출할 수 있는 희망의 속도, 초속 11.2㎞다.
이용균 콘텐츠랩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