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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뒷부리도요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

입력 2025.09.03 21:02

수정 2025.09.0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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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부리가 크고 위로 휘어 큰뒷부리도요라 불린다. 쉬지 않고 가장 멀리 나는 세계기록을 가진 새다. 1만3000여㎞. 알래스카에서 번식하고 뉴질랜드에서 월동하는 철새의 운명이 남긴 기록이라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다. 다행히, 봄이 와 북쪽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잠시 머물 곳이 있다. 한국의 서천갯벌과 수라갯벌. 그 지척이 새만금 신공항 부지다.

새만금 역시 세계기록을 가졌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 2010년 기네스북에 등재될 때는, 얼마나 많은 토석을 쏟아부었는지, 국토 면적이 얼마나 늘어날지, 공사비용은 얼마며 동원된 인력과 장비 규모가 어땠는지, 그 모든 기록이 ‘바다의 만리장성’을 가진 자부심에 동원되었다. 훗날 ‘잼버리 사태’라는 부끄러움의 이유가 될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새만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는 실패가 기본값이다. ‘메가프로젝트의 철칙’이라고 한다. 비용은 늘어나고 시간은 길어지며 계획은 계속 달라진다. 경험은 쌓이지 않고 이해관계는 복잡해지고 실행 가능성은 희미해진다. 그런데도 멈추지 못한다. 타당성을 평가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기념비적’ 개발에 자신을 결부시키고 싶은 정치인들이, 기대를 수정하는 대신 미래를 조작하기 때문이다.

새만금 개발은 1987년 대통령 선거가 낳은 프로젝트다. 야당 후보 김영삼이 던진 새만금 간척사업 공약을 여당 후보 노태우가 ‘복붙’했다. 지지부진하던 사업을 야당 총재 김대중이 촉구하며 착공했다. 착공 이후 멈출 기회가 있었다. 유사한 개발사업인 시화호 오염 실태가 드러나면서 새만금 개발 백지화 요구가 확산한 것이다. 그러나 “전북의 염원”을 내세운 지방정부가 반대 여론을 제압했다. 새만금 간척사업 취소 청구 소송도 있었으나 법원은 멈출 기회를 내버렸다. 2006년, 방조제가 끝내 바다를 막았을 때 애초 계획을 기억하는 이는 없었다. 2004년이면 다 끝나 있을 거라던 시간표도.

“문제는 속도입니다.” 촛불민주주의 실현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가 나섰다. “세계 최대 재생에너지 복합단지”를 만들겠다고 분주하더니 새만금 신공항 사업에 ‘예타’(예비타당성조사) 면제라는 날개를 달아줬다. 비용 대비 편익도 낮고 인근 군산공항만 봐도 적자가 빤히 예상되는 사업이다. 수많은 생물에게서 갯벌을 빼앗고 새들을 항공기와의 충돌 사고로 몰아넣는 일이다. 더 나은, 더 책임 있는 결정에 이르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새만금과 함께 민주주의도 실패하고 있다.

개발 프로젝트는 흔히 경제 대 환경, 인간 대 생태의 구도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는 실제와 다르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어민들의 반대를 묵살하지 않고서는 진행될 수 없었다. 대형 건설업체들은 쾌재를 불렀지만 지역경제로 돌아오는 몫은 거의 없었다. 개발은 무언가를 저렴하게 만드는 대가로만 성사된다. 계산도 되지 않는 생물들처럼 어떤 인간들은 값싼 존재가 되어 지워지거나 착취당한다. 개발의 흔한 구도는 경제, 환경, 인간 각각에서 갈등해야 할 것을 숨길 뿐이다.

설령 계획대로 새만금 신공항이 지어지고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달라질까? 그리로 출퇴근할, 대부분이 비정규직일 노동자의 삶에 바다를 땅으로 만든 기록이 위로가 되지는 않을 듯하다.

새만금은 다시 민주주의를 질문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평등하게 살아갈 것인가. ‘지방’이 실패가 예정된 개발의 덫에 빠지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 모든 생명이 서로 기대며 살아갈 조건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는 방향을 정해야 한다. 새만금을 이제 탈출하자. 927기후정의행진이 제안하듯, 새만금 신공항을 백지화하고 민주주의로 기후정의로 광장을 잇자.

큰뒷부리도요를 앞세운 ‘새, 사람 행진’이 서울로 오고 있다. 9월11일 서울행정법원의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판결을 앞두고, 9월5일 남태령을 함께 넘자고 제안한다. 갈등하지 못했던 것들이 갈등할 수 있게 된 장소, 법의 규격을 넘어 내란 이후의 민주주의를 상상하게 한 장소. 새와 사람이 함께 넘어 좋을 고개다.

큰뒷부리도요도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 있더라도 더 멀리 나는 기록은 아닐 듯하다. 주어진 몸으로 무리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그저 자랑스럽지 않을까. 그렇다면 큰뒷부리도요에게, 날지도 못하는 인간은 무얼 자랑할 수 있을까? 더 많은 공항이나 바다를 막아 지도를 바꾸는 일은 아니다. 나는,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동물이 인간이라고 자랑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멈출 거라고.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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