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경유 가스관 건설 양해각서 체결…유럽 시장 상실 ‘보상 효과’
열병식서 반미 연대 과시…중 매개로 인도·몽골·북한과 3각 외교전
전문가 “러시아 중국서 떼어내기 전략 사실상 무산…트럼프 실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부터 나흘간의 중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중국·몽골과의 3자 회담에서 에너지 협력을 끌어낸 데 이어 중국·북한 최고지도자와 3국 반미 연대를 과시하며 외교전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타스통신은 4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귀국 직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번 일정은 러시아가 극동 개발을 논의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동방경제포럼(EEF) 참석과 연계된 활동이 중심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극동 지역 연료·에너지 부문 발전을 주제로 회의를 주재할 예정이며 전력 생산 문제 등이 집중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방중에서 극동 개발을 뒷받침할 에너지 인프라 기반을 확보했다. 지난 2일 러시아와 중국은 몽골을 경유하는 천연가스 공급용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건설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러시아 서부에서 중국 북부까지 30년 동안 연간 500억㎥의 가스를 공급하게 될 이 가스관 건설은 러시아가 오랫동안 추진해온 사업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합의는 중국의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를 크게 늘리고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유럽 시장을 잃은 러시아에 보상 효과를 제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발표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푸틴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의 3자 회담 직후 나왔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회담에서 “무역·투자 확대와 함께 금융·에너지·디지털경제·교육·환경·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SCO 정상회의 연설에서는 무역 결제를 위한 공동 채권 발행과 자체 결제 시스템 구축을 제안해 서방의 대러 제재에 맞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푸틴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외교적으로도 상징적인 장면을 잇달아 연출했다. SCO에서는 미국의 50% 관세 조치를 맞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시 주석과 환담했다. 이어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는 시 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톈안먼 성루에 올라 반미 연대를 과시했다. 북·중·러 정상이 한 무대에 선 것은 66년 만이다.
김 위원장이 북·러 양자회담에서 “형제적 의무”를 언급하며 러시아의 주권과 영토, 안전이익 수호를 전적으로 지지하겠다고 한 것 역시 푸틴 대통령에게는 의미 있는 성과다. 나흘 동안 중국을 매개로 인도·몽골·북한과 차례로 3각 외교 구도를 형성한 셈이다.
그는 노골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가디언에 따르면 그는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와의 회담에서 “우크라이나는 동유럽 이웃국들을 통해 에너지 자원을 공급받고 있다. 그 가스를 막아달라”며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가스 공급 차단을 제안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SCO 정상회의에 참석한 피초 총리는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EU의 대러 제재안을 지연시켜온 대표적 친러 성향 지도자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베이징에서 연 기자회견에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우크라이나의 행정부 수반 대행’이라고 깎아내리며 “회담할 준비가 됐다면 모스크바로 오라”고 비꼬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지난달 15일 미·러 알래스카 정상회담 이후 그를 설득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모색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뼈아픈 실패로 평가된다.
알렉산드르 가부예프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외교 목표였던 ‘러시아를 중국으로부터 떼어내기’ 전략이 사실상 무산됐음을 보여준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5일 EEF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양자회담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이번 포럼은 ‘극동: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을 주제로 열리며 70여개국의 정부 대표와 기업인 4500여명이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