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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1932~1933년 소비에트연방 우크라이나에서 대기근이 발생했다.

볼셰비키가 우크라이나 독립에 적대적이었던 데는 정치적 이유도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대부분 농민이었는데, 마르크스주의 계급 이론을 신봉했던 볼셰비키들은 '계급 의식이 없다'는 이유로 농민을 불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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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참사, 우크라이나 대기근

입력 2025.09.04 21:29

수정 2025.09.0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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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원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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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4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1930년대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우크라이나 민족을 말살하기 위한 스탈린의 기획이었다.  사진은 당시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굶주린 사람들이 거리에 쓰러져 죽어가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글항아리

300만~4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1930년대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우크라이나 민족을 말살하기 위한 스탈린의 기획이었다. 사진은 당시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굶주린 사람들이 거리에 쓰러져 죽어가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글항아리

볼셰비키, 우크라 독립 추진 ‘경계’
집단농장 반발 농민들 수용소행
모든 식량 징발로 최악 상황 몰아
굶어 죽거나, 처형당해 죽거나

1932년부터 2년간 400만명 희생
우크라가 푸틴을 믿지 못할 이유

“배가 크게 부풀어 올랐고, 목은 새의 목처럼 길고 가늘어졌어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고, 굶주린 유령처럼 보였죠.”

1932~1933년 소비에트연방 우크라이나에서 대기근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300만~4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를 ‘홀로도모르(굶주림에 의한 멸종)’라고 부른다.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인 앤 애플바움이 2017년에 출간한 <붉은 굶주림>(원제: Red Famine)은 홀로도모르가 자연재해가 아니라 소련의 볼셰비키 정권이 우크라이나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기획한 참사라는 사실을 800여쪽 분량으로 서술한다.

기근은 먼저 신체를 파괴했다. 굶주린 사람들은 피부가 얇아지고 체내에 수분이 축적된 결과, “맑은 샘물로 가득 찬 유리병처럼” 보였다. 피부는 갈라지고 상처에선 진물이 흘렀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앉아서 죽거나 잔디밭에서 놀다가 죽었다. “죽은 마을 주민들이 도로와 길가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시체를 옮길 사람보다 옮겨야 할 시체가 더 많았죠.” 겨우 구한 빵을 먹다가 사망하기도 했다. 너무 굶주린 탓에 몸이 음식물을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근은 윤리와 인간성도 파괴했다. 어떤 부모들은 굶어서 약해진 자식을 방치해서 죽이거나 목졸라 죽였다. 쇠약해진 사람이 생매장당하는 일도 빈번했고, 식인마저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굶주린 이들이 “아이들을 죽이고 그들의 살을 식량으로 사용한” 사례들이 다수 보고됐다. 키이우주에서는 1933년 1월9일부터 3월12일까지 69건의 식인 사건이 발생했다. 기록되지 않은 사건들은 더 많을 것이다.

[책과 삶] 만들어진 참사, 우크라이나 대기근

붉은 굶주림
앤 애플바움 지음 | 함규진 옮김
글항아리 | 816쪽 | 4만8000원

우크라이나에서 왜 이처럼 참혹한 사태가 일어났는지를 이해하려면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릴 정도로 풍부한 곡물 생산량을 자랑하는 우크라이나는 18세기 이후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우크라이나어와 우크라이나 문화에 대한 민족적 자의식이 사라진 적은 없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발발해 제정이 무너지자 우크라이나인들은 독립국가를 세울 기회를 맞는다. 1917년 4월 우크라이나인들은 라다(의회)를 구성한다. 그해 11월에는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이듬해 1월에는 우크라이나 독립을 공표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레닌과 볼셰비키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우크라이나가 국가라는 생각 자체를 경멸하는 것이 심지어 혁명 이전부터 볼셰비키적 사고의 핵심에 있었다.” 우크라이나 민족에 대한 경멸은 러시아 극좌부터 극우까지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리지 않는 러시아인들의 보편 정서였다. 볼셰비키가 우크라이나 독립에 적대적이었던 데는 정치적 이유도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대부분 농민이었는데, 마르크스주의 계급 이론을 신봉했던 볼셰비키들은 ‘계급 의식이 없다’는 이유로 농민을 불신했다.

1919년 집단화와 중앙 계획식 농업에 반발해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일으킨 대규모 반란은 볼셰비키가 우크라이나에 ‘특단의 조치(츠레즈비차이니예 메리)’를 취해야 한다는 결심을 굳히도록 만든 사건이다. 볼셰비키는 러시아인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곡물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사회주의는 지지했으나 볼셰비키는 지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지주가 사라지기를 바랐지만, 스스로 농장과 토지를 갖고 싶어했다. 그들은 집단농장이라는 형태의 ‘제2의 농노제’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종교, 언어, 관습이 존중받기를 바랐다.”

스탈린은 우크라이나를 소련의 산업화를 신속하게 달성하기 위한 내부 식민지로 간주했다. “농민을 더 강하게 쥐어짠 다음 이 ‘내부 축적물’을 소련 공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 같은 계획하에 악명 높은 ‘탈쿨라크화’가 시작된다. 볼셰비키는 농민을 쿨라크(부농), 세레드냐크(중농), 베드냐크(빈농) 등으로 나누고 집단농장에 반대하는 쿨라크를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빈농들에게는 쿨라크의 ‘잉여 농산물’을 찾아내 몰수하는 일을 맡겨, 농촌을 ‘내전’ 상태로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농촌 파괴 정책으로 농업 생산량이 급감하고 심각한 기근의 조짐이 나타났는데도 스탈린은 멈추지 않았다. 1932년 가을 볼셰비키는 곡물뿐만 아니라 채소와 가금류까지 포함한 모든 식량에 대한 징발을 명령했다. “(스탈린의 명령은) 분명 우크라이나 농민에게 치명적인 선택을 강요했다. 곡물 비축분을 포기하고 굶어 죽거나, 곡물 비축분을 숨겼다가 체포되고 처형되거나.” 곡물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마을은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소금, 등유, 성냥 같은 기본적인 공산품도 살 수 없었고 은행에서의 신용 거래도 차단됐으며, 트랙터도 수리할 수 없었다. 뒤이어 스탈린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러시아 영토로 넘어가는 이들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공화국 경계선을 폐쇄하는 봉쇄령까지 취했다.

“그해 가을 여러 지침, 즉 징발과 블랙리스트, 국경 통제, 우크라이나화 종식 등이 정보 차단 및 특별 수색과 결합되어, 현재는 홀로도모르라고 기억되는 기아로 귀결됐다. 그리고 홀로도모르는 예측할 만한 결과를 가져왔다. 우크라이나 민족운동이 소련의 정치와 공적 생활에서 완전히 제거된 것이다.”

소련은 이후 홀로모도르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각 지역에는 사망자 명부와 기록을 불태우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1937년 인구조사 결과가 볼셰비키 관료들의 추정치와 800만명이나 차이가 나자 통계 발표는 중단됐고 인구조사국 책임자는 체포돼 총살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인식은 소련 붕괴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왜 푸틴을 믿지 못하는가. 답은 역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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