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40년에 가까운 민주화의 진전 속에서, 한국 정치의 풍경은 크게 달라졌다. 민주화 이후 초기에는 독재를 계승하는 집권여당 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는 야당의 구도였기 때문에, 시민들은 야당의 목소리 속에서 억눌린 시대정신을 확인했고, 그 자체가 희망이었다.
그러나 민주진보 세력이 집권하기도 하고, 보수 세력이 재집권하기도 하는 권력 순환이 일상이 되면서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정치의 한복판에 등장했다. 상대를 공격할 때는 최고의 윤리적 기준을 적용하면서, 우리 편을 감싸고 옹호할 때는 최소한의 기준만을 들이대는 이중성. 그것이 바로 내로남불이다.
내로남불은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날카로운 부메랑이다. 상대를 겨냥해 쏜 화살이 되돌아와 자신을 겨누는 풍경이 매번 펼쳐진다.
최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그 상징적 장면이었다. 장관 후보자가 과거에 했던 발언을, 야당 의원이 이름만 바꿔 그대로 되돌려준 것이다. 오늘의 정의가 내일은 위선이 되고, 오늘의 공격이 내일은 방패가 된다. 국민은 이 장면을 지켜보며 ‘다 똑같은 부류’라는 냉소적 평가에 갇히게 된다.
오늘의 정의가 내일의 위선이 돼
그렇다면 민주진보 정당은 어떻게 ‘내로남불의 무한 반복’이라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나는, 이중기준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 여야가 동일한 흠결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바로잡을 보편적인 규범 혹은 규칙을 새롭게 정립하는 방향으로 일종의 ‘공화적 이니셔티브’를 발휘하는 것을 방안으로 생각한다. 모든 것에 적용할 수는 없지만, ‘내로남불 정치’를 일종의 새로운 ‘규칙의 정치’로 최대한 전환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보수도 이런 노력을 해야 한다.
정치의 본질은 갈등이다. 문제는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국회선진화법이 그랬다. 갈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물리적 충돌 없는 전쟁이라는 새로운 규칙이 등장했다.
내로남불을 넘어서는 규칙의 정립 역시도, 갈등의 ‘범위’를 변화시키는 것뿐이지, 정치적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을 어떤 규칙 속에서 풀어내느냐에 따라 정치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
야당 입장에서는 ‘닥치고 공격’이 유리하다. 갈등을 극대화하고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이 전략적으로 득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당은 갈등 사안들을 최대한 탈(脫)쟁점화하는 것이 득이 된다.
한 개혁 의제가 내로남불 공방 영역에 들어가는 것은 그 개혁의 정치적 효과가 축소되고,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연장으로서의 민주진보 정치가 가졌던 거대한 도덕적 우위가 약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노력이 부족했기에 오늘의 불안정한 정권 교체 주기가 생겼다고 나는 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이 지나고 이제는 문재인, 윤석열 정부가 단임으로 교체되는 불안정의 시대가 왔다. 단순한 선거 결과의 산물이 아니다. ‘내로남불 정치’가 빚어낸 불신이 그 배경에 있다. 이것을 끊지 않으면, 짧은 단임의 패턴이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정치가 전투적일수록 내로남불의 그림자는 짙어진다. 공직 수행과 권력 행사의 기준이 높아지는 장점도 있으나, 국가 공동체의 안정성은 취약해진다. 집권 초기마다 반복되는 ‘산하기관장 사퇴’ 논란이 그 사례다.
윤석열 정부는 감사원을 통해 압박하고, 검찰을 통해 비리 수사를 해서 퇴진을 압박했다. 이재명 정부 역시 같은 논란에 직면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하에서 왜곡된 감사원, 검찰, 사법부 등 법치주의 국가제도의 개혁이 ‘보복의 정치’가 아니라 여야와 보수·진보를 뛰어넘는 공화적 민주개혁으로 인식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물론 정치에는 전투의 순간이 있다. 형세를 바꾸기 위해 무리수를 둬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내로남불의 무한반복’을 끊어낸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불가피한 영역과 불가피하지 않은 영역을 구분해서, 후자에서라도 내로남불 공방을 뛰어넘는 대한민국 공동체 또는 그 일부로서의 정치 공동체의 규범과 규칙을 재정립해가는 이니셔티브를 발휘했으면 한다.
공동체 규범과 규칙 재정립해야
미국처럼 정부 교체와 함께 교체되는 직무의 범위를 정하는 ‘플럼북’(Plum Book) 같은 것을 만들 수도 있고, 아예 법으로 교체의 범위를 정할 수도 있다. 또한 인사청문회 때마다 반복되는 교수 장관 후보자들의 표절 논란 시비와 관련해서도, 정치적 공방 대상에 그치지 않고, 객관적인 검증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만드는 식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지금처럼 장관 청문회가 역량 검증의 장이기보다 오로지 상대방을 공격하는 정략적 공방의 장으로, 심지어 성인군자 여부를 가리는 공격의 장처럼 변모하는 것은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공개 정책청문회와 비공개 윤리청문회를 분리하고, 후자에서 형사적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은 수사 의뢰를 의무화하는 장치를 도입하는 방식 같은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5년 후부터 시행”이라는 조건부 합의라면 현실적 가능성도 충분하다. 물론 이러한 과정 역시 최대한 협치형으로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당의 내로남불형 변화 시도가 오히려 공격의 빌미가 되고, 진정성이 퇴색한다.
지금은 내란 종식을 향한 치열한 전투가 진행되는 과도기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고 결과가 사법부의 판단으로 이월될수록, 정치는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국면 이후 새로운 공화적 규칙을 만들어내는 시대적 이니셔티브를 고민하지 않으면, 내로남불 공방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렵다. 정치가 국민의 냉소가 아닌 희망을 불러일으키려면, 이제는 누가 더 잘 공격하는가 하는 투쟁적 이니셔티브에 더해, 공동체를 위한 공화적 이니셔티브를 어떻게 발휘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시각을 보태면, 새로운 이니셔티브의 영역은 많이 개척할 수 있다. 전쟁 중에도 전쟁 이후의 평화와 재건을 준비하듯 말이다.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