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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법적 조화를 꿈꾼다

입력 2025.09.04 22:00

수정 2025.09.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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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 바흐의 음악에 흠뻑 빠져 지냈다. 독립적인 다성부(polyphony)가 어울려 음악적 건축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경이로웠다. 하나의 선율을 또 다른 선율이 따른다. 각기 독립적인 선율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때로는 대립하고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묘하게 어울린다. 음들이 일으키는 긴장이 생동감을 자아내고 마침내 원만한 조화에 이르는 과정은 마치 뒤척이며 흐르던 지류들이 합류해 강을 이루고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 스며드는 광경과 같았다. 바흐의 대위법은 조화로운 대립의 메타포이다.

연주회장을 돌아 나올 때마다 우리가 직면한 정치적 난맥상이 떠올라 암담했다. 사회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공존하는 다성적 공간이다. 사람들은 각기 고유한 삶의 서사와 기억을 품고 살아간다. 다름 혹은 차이는 필연적이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다. 차이를 인위적으로 해소하려 할 때 소외가 일어난다. 산다는 것은 낯선 세계와의 만남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삶의 지평은 넓어진다. 정치는 그러한 차이 혹은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각기 다른 이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 진영의 목소리만이 용인되고 다른 목소리가 억압될 때 정치는 독백이나 불협화음으로 변질된다.

영국 소설가인 줄리언 반스는 소설 <시대의 소음>에서 스탈린 치하에서 살았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보여준다. 쇼스타코비치는 1929년 ‘소비에트 예술의 큰길에서 벗어났다’는 비난과 함께 재직하던 학교에서 해임당했다. 예술가에게 굴욕을 안겨주고, 생계 수단을 빼앗고, 회개를 명령하는 체제에서 사는 일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언제 체포될지 몰라 가족들에게 체포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승강기 옆에 여행 가방을 놓아두고 초조하게 담배를 피우는 작곡가.

체제는 ‘낙관적인 쇼스타코비치’를 요구했다. 그는 체제의 요구에 순응하는 척하면서도 시대의 소음을 뛰어넘어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진력했다. 그의 곡들을 무심히 들을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반스는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라 말한다. 그 속삭임은 무력해 보이지만 소음을 뚫고 솟아올라 사람들을 더 큰 정신의 지평으로 인도한다.

동일성의 폭력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꽃필 수 없다. 대위법적 다양성이 억압될 때 세상은 빈곤해진다. 이즈음 K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은 지난 시절 우리 의식을 옥죄고 있던 억압들이 사라진 덕분이다. 억압은 저절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분투해 얻어낸 결과물이다. 그 자유의 공간은 다양한 주체들이 자기답게 살아도 되는 장소이다. 하지만 자기다움이 타자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바흐의 대위법이 다양한 소리를 용납하면서도 어지럽지 않은 것은 주선율의 경계를 서로 지키기 때문이다.

대위법적인 정치는 다름을 용납하는 것을 넘어 존중하는 데 이르러야 하지만, 다름이 지향하는 더 큰 가치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성찰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성찰적 자아는 자기 입장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타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조화를 이루기 위함이다. 화이부동의 정치는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면서도 함께 지향해야 할 가치를 잃지 않는 정치다. 그 가치의 핵심은 지속 가능한 미래, 생명, 평화가 아닐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모든 정치 주체들이 온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바흐의 음악이 급변하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연주되는 까닭은 그 음악이 상기시키는 높음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양한 소리들이 서로 모방하고 충돌하고 엇갈리면서도 결국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대위법적 세계가 열리기를 고대한다. 잊힌 목소리들이 다시 경청되고,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세상의 꿈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결코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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