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곳곳에 극한 호우가 내린 지난달 13일 서울 서초구 한 거리에서 한 시민의 우산이 바람에 뒤집혀 있다. 한수빈 기자
폭염, 폭우 등 극한기상 현상이 소비자물가를 장기간 큰 폭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경고가 나왔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될 경우 극한기상 현상에 따른 물가상승 충격이 2100년까지 현재보다 두배가량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극한기후에 대비해 기후대응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은이 8일 발표한 ‘극한기상 현상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월별평년값보다 월중 일최고기온이 1℃ 증가하는 ‘고온충격’은 발생 직후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0.056%포인트 끌어올렸다. 이후 물가상승 압력은 2년 넘게 유지돼, 평균 0.055%포인트가량 장기간 물가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월별평년값보다 일 최다강수량이 10mm 증가하는 ‘강수충격’은 발생 직후 소비자물가를 0.031%포인트 끌어올린 뒤, 15개월 동안 물가상승 압력이 지속됐다. 평균 물가상승 효과는 0.033%포인트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이상고온 현상의 장기적인 심화 추세로 인해 고온충격의 영향이 단기에 그치지 않고 장기화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기상충격에 따른 소비자물가상승률 추이. 한국은행
고온충격과 강수충격의 크기가 상위 5%를 넘어서는 ‘극한기상 현상’의 경우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컸다.
고온충격 발생 시 일반고온 구간에선 1℃ 추가 기온 상승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1년간 평균 0.043%포인트 끌어올렸지만, 극한고온 구간에선 이보다 2.5배 높은 0.11%포인트까지 확대됐다. 일반강수 구간에선 강수충격 당(10mm 증가) 1년간 물가상승률이 0.024%포인트 수준이었지만, 극한강수 구간에선 이보다 2배 이상 높은 0.054%포인트까지 불어났다.
품목별로는 농·수산물 등 상품물가는 고온·강수충격에 모두 상승압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서비스물가의 경우 고온충격에는 서비스 운영비 증가에 따라 상승압력을, 강수충격엔 서비스 수요 위축의 영향으로 하방압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기후대응 노력이 줄어들면 극한기상 현상이 심화되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가팔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상청의 기상전망을 토대로 미래 소비자물가상승률 변화를 추정한 결과, 기후위기에 가장 소극적으로 대응한 ‘고탄소경로’에서 고온충격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은 2031~2050년 중엔 최대 0.6%포인트, 2076~2100년 중에는 최대 1.04%포인트까지 확대되는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 물가상승 압력(최대 0.51%포인트)이 2배 넘게 증폭된다는 의미다.
강수충격의 경우 2100년까지 현재(최대 0.51%포인트)보다 1.5배가량 불어난 0.71%포인트까지 물가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다만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저탄소경로’ 하에선 2100년까지 고온·강수 충격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이 모두 0.35%포인트 안팎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한은은 “저탄소 전환 투자 확대 등 기후변화 완화 대응이 극한기상 현상으로 인한 경제적 영향을 축소하는 데 효과적인 정책임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연정인 한은 지속가능성장실 과장은 “농축수산업 등 기후 취약 부문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기후변화 적응 관련 투자를 늘리고 기상충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조기에 파악·예측할 수 있는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