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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없음과 부담 없음 사이

입력 2025.09.08 21:00

나는 ‘문자 메시지’를 문자로 된 메시지로 여겼다. 글을 쓰듯 문자를 보냈다. 지금이라면 ‘ㅋㅋㅋㅋ ㅇㅇ’이라고 쓸 일을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라고 입력하는 식이었다. 지금 떠올리니 약간 징그럽기도 하다. 요즘 누가 마침표까지 꼬박꼬박 찍는다고. 그래도 이 버릇은 온라인 채팅, 메신저, 블로그, SNS로까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나이 있는 남자분인 줄 알았어요… 너무 점잖게 말해서’라는 말을 듣고 당황했던 기억도 난다. 온라인 대화를 위한 문장 규범을 받아들인 건 훨씬 나중의 일이다.

현재는 초성 입력조차 이모티콘으로 대신하는 중이다. 일일이 입력하지 않아도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말할 수 없이 편하다. 메일 등 이모티콘을 쓰지 못하는 매체로는, 터치스크린 기기를 사용하다가 일반 모니터로 전환할 때처럼 가로막힌 기분이 든다. 게다가 이모티콘은 귀엽고 예쁘고 웃기는 것을 취향대로 고를 수 있지 않나. 내가 좋아하는 종류는 ‘일하기 싫다’고 울거나 ‘일해야 한다’며 압박감을 주는 이모티콘이다. 일하기 싫다고 말하고 싶을 때면 이 심정을 대변해줄 이모티콘을 구매했다. 시험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청소니 뭐니 부산을 떠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카테고리의 이모티콘을 잔뜩 구경해보니 주로 3가지 용도가 있었다. 맞장구, 한탄, 핀잔. 인사말과 마찬가지로 맞장구는 세세한 내용보다 리액션의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 그런데도 이를 손수 입력하려면 좀 고민하게 된다. ‘네’와 ‘넵’ ‘넹’ ‘네!’만 해도 느낌이 다르다. 이모티콘은 이미 템플릿이 정해져 있으므로 훨씬 간편하다. 주관식 문제가 ‘다음 보기 중 알맞은 것을 고르시오’ 하는 객관식 문제로 변하는 셈이다. 한탄이나 핀잔도 이모티콘을 통하면 직접 말할 때보다는 부드럽고 유쾌하게 받아들여진다. 발화자가 하나하나 택한 표현이라기보다 상황에 알맞은 이미지를 끌어온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인 듯하다.

온라인 장례식에 조문했을 때도 이와 유사한 간편함을 느꼈다. 조문용 웹페이지에 접속했더니 글을 남기는 자리에 조의를 표현하는 기본 문장이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인사를 남기고 싶으면 그중에서 적당히 골라 클릭하면(터치하면) 되었다. 만약 내가 예전 버릇대로 완성된 글을 적으려 했다면 끙끙대다가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부의금은 온라인 계좌이체로 보낼 수 있었다. 아주 쉽고, 금세 끝났다. 조문 절차를 간편하게 처리하는 만큼 정성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경우 장례식장을 방문할 정도로 고인과 친분이 있지는 않았다. 온라인의 간편한 시스템 덕분에 오히려 먼 관계에서도 부담 없이 마음을 표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전화를 걸지 않고 문자로만 연락하는 건 너무 데면데면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이 없다, 성의가 없다, 혹은 예의 없다. 표현은 제각각이라도 그 ‘없음’이 뭔지 안다. 전화보다 문자, 나아가 이모티콘이 편하다는 이유로 상대방과 공들여 대화하길 회피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맞다. 또한 이런 ‘부담 없음’에서 용기를 얻는 것도 사실이다. 온라인 청첩장은 직접 만나지 않아도 보낼 수 있고, 어중간한 사이에서는 그쪽이 오히려 친밀감을 북돋기도 한다. 이것이 단순히 변명만은 아니다.

심완선 SF평론가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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