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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데헌’과 국적논란

입력 2025.09.08 21:00

수정 2025.09.0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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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미국 연수 시절, 남부의 작은 도시들을 여행하며 묘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식당에서, 라디오에서, 창문을 열고 달리는 옆 차선의 픽업트럭에서, 익숙한 K팝 노래들이 흘러나오던 순간들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세인트오거스틴에서 만난 한 교민은 “이 시골 동네까지 K팝이 들린다는 건 ‘진짜’라는 것”이라며 미국에서 K팝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설파’했는데 정작 나는 “이 소도시 사람들까지 K팝을 안다고?”라며 믿지 못했던 것 같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빌보드와 넷플릭스를 동시에 석권하며 세계적 신드롬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무속신앙과 K팝을 모티프로 한 애니메이션이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자 많은 사람이 환호했지만, 축제 분위기 속에서 의외의 논쟁이 따라붙었다. ‘과연 <케데헌>을 진정한 K콘텐츠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시선이다.

논란의 이유는 이렇다. 영화의 제작은 미국의 소니 픽처스가, 배급과 투자는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가 맡았다는 것. 연출자 매기 강이 캐나다로 이주한 한국계 캐나다인이라는 것도 논쟁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 제작사가 아닌 외국 자본과 시스템에 의해 완성된 작품을 두고 ‘K콘텐츠’라 부르는 것이 맞느냐는 질문이 제기된 것이다.

2000년대 초반 한류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확산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K콘텐츠의 영향력은 한국 안팎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아시아에서만 통한다’는 폄하가 있었고, 서구 무대에서의 성과를 열망했다. 그러나 지난 20여년 사이 풍경은 급격히 달라졌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를 뒤흔들었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이정표를 세웠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스트레이 키즈, 트와이스 등 K팝 그룹들은 글로벌 음악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으며 대규모 월드투어를 매진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늘 성공에 대한 의심이 자리한다. 겸손을 미덕으로 여겨온 탓일 수도 있고, ‘국뽕’이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과도한 자부심을 경계하려는 무의식적 자기검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세계 무대에서의 성취를 바라보면서도 ‘정말 우리의 힘으로 이룬 성과인가’라는 질문을 멈추지 못한다. <케데헌>의 국적 논란은 바로 그 습관화된 의심의 또 다른 얼굴이다.

<케데헌>의 성공은 한국 문화가 가진 힘과 매력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음을 다시 증명했다. 매기 강은 “한국 전통을 과도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한국적 문화가 세계인에게 전달될 수 있다”며 진정성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했다. 억지로 세계인의 취향을 맞추려 애쓸 필요도, 스스로의 성과를 깎아내리며 주저할 필요도 없다. 그의 말처럼 <케데헌>은 “한국과 K팝에 바치는 러브레터이자 헌사”로 K콘텐츠의 새로운 정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습관처럼 도사리는 의심을 거두자. 지금은 ‘우리 것이냐, 아니냐’를 따질 때가 아니라 진정성이 이룬 성취를 순수하게 즐길 때다. 의심보다 축하가, 경계보다 환호가 필요한 순간이다.

노정연 문화부 차장

노정연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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