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최근 개최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전승절 80주년 행사는 미·중 전략 경쟁의 중간 성적표를 발표하는 무대 같았다. 푸틴은 트럼프 요구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지 않은 채 시진핑과 만나 ‘무제한의 우정’을 나눴다. 4자 안보대화 쿼드의 일원으로, 미국과 함께 중국 견제라는 목표를 공유했던 인도의 모디 총리는 트럼프의 전화를 수차례 거부하고 중국으로 날아가 7년 만에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했다. 트럼프가 인도에 50% 벌칙 관세를 부과한 뒤의 일이다. 만나고 싶다는 트럼프 제의에 응답하지 않은 김정은은 베이징으로 달려가 6년 만에 시진핑의 손을 굳게 잡았다.
지금 미·중 가운데 고립되는 쪽이 있다면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단기 이익을 좇는 트럼프, 중장기 전략구상을 갖고 대응하는 시진핑 간 승패를 벌써 점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중국이 국제질서를 주도하게 될까? 중국은 필요한 역량을 지니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일당독재 체제의 한계 때문에 세계에 통용될 보편적 가치를 제시할 수 없다. 그건 중국도 안다. 중국은 그저 강대국이 되려는 것뿐이다.
톈안먼 성루에 북·중·러 3인이 나란히 선 장면에 압도될 필요 없다. 3인이 어렵사리 만나고도 북·중, 북·러 따로 만난 것은 국제여론의 눈치를 보아서만이 아니다. 북·중·러의 지정학적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정학은 국제정세 변화를 견딜 만큼 견고하다. 지정학이 아니더라도 본래 의심 많고, 변덕스러운 독재자들의 연대는 어려운 법이다.
북한은 중·러 사이를 계속 오갈 것이고, 중·러도 남북 사이를 저울질할 것이다. 중국·인도 협력도 과장해서는 안 된다. 양국은 지역 패권을 둘러싼 경쟁자다. 인도는 중국에 쏠리지 않는다.
지금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이 무너뜨리는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트럼프 임기 종료 후 회복될지 가속될지 다른 질서로 대체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상당 기간 세계는 불확실성으로 유동할 것이고, 그런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국제 규범과 가치가 아니라, 강대국 정치라는 점은 분명하다.
강대국 정치에서 국가들은 힘으로 정의되는 국익을 추구하고 세력권 확보를 위해 거래하고, 필요하면 강제력도 사용한다. 그린란드·파나마운하를 차지하겠다는 트럼프, 분쟁 수역에 해상기지를 건설하는 시진핑, 비핵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 핵위협하는 푸틴이 바로 강대국 정치의 주역이다.
이런 세계에서는 공평하게 어느 국가도 자국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핵전쟁 위협이든 미사일 기습 공격이든 관세폭탄이든, 수출 통제든 무엇이든 동원할 수 있다. 국제 규범과 질서가 무너졌는데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하라 말라 따질 아무런 근거가 없다. 북한이 당당히 국제적 행위자로 부상한 이유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중·러로부터도 제재받는 처지였다. 미국을 통하지 않고는 세계 속으로 나아갈 수 없어 미국에 제재 해제를 호소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거짓으로 핵 포기 약속을 해야 했던 외톨이였다. 그랬던 김정은은 이제 처벌 대상이 아닌, 강대국 지도자가 만나려 애쓰는존재가 되었다.
불확실성과 혼돈의 전환기 한반도를 덮치고 있는 강대국 정치의 거친 물살을 한국 특유의 온실 외교, 눈치 외교로는 헤쳐가기가 어렵다. 가장 신뢰할 만한 동맹에서 발생한 일이 잘 말해준다. 미국 정부는 자기의 투자 요구에 따라 건설 중인 조지아주 한국 기업의 배터리 공장을 급습해 한국인 직원·기술자 300여명을 강도 살인범처럼 쇠사슬로 묶어 끌고 갔다.
이제는 누구와도 국익 갈등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새로운 문제를 과거 방식으로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 당면 현안을 시의성 있게 풀어가면서도 한편으로 중장기 전략을 세우고 외교적 자율성에 필요한 역량을 축적해야 한다.
한국이 강대국은 아니지만 중견국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다른 중견국들과 연대해 강대국 정치의 불안을 완화하는 것이다. 나아가 자유주의 질서를 재구축하는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앞장섬으로써 약소국 외교의 틀을 깨야 한다.
아직도 트럼프 비위 맞추며 4년을 넘겨보자는 안이한 사고를 하고 있다면 버려야 한다. 그런 자세로는 잘 넘길 수 없고, 잘 넘긴다 해도 4년 뒤 좋은 일이 생기리라는 보장이 없다. 국제질서의 전환 과정과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이대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