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채상병 순직 사건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고위공수처수사처(공수처)에서 수사를 받다 주호주대사로 부임해 ‘도피성 출국’ 논란을 일으킨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3월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도피성 주호주대사 임명 논란’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팀이 지난해 열린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이 기획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장관은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의 피의자인데도 주호주대사로 임명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특검팀은 안보실이 이 전 장관에게 ‘자진귀국’ 명분을 준 회의를 구성하는데 관여한 것으로 보고, 조만간 장호진 당시 국가안보실장 등을 불러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8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특검팀은 최근 외교부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하면서 지난해 3월 외교부·국방부·산업통상자원부가 공동으로 주관한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가 “안보실 주관으로 기획된 일정이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주관 부처가 아닌 ‘윗선’인 안보실에서 회의 일정과 안건 등을 먼저 구상해 외교부 등에 하달했다는 의미다.
특검팀은 방산공관장 회의가 급조된 정황을 뒷받침하는 진술도 확보했다. 최근 특검팀은 이 전 장관과 함께 방산 회의에 참석한 주요국 대사들을 불러 조사했는데, 대사들은 당시 회의가 “이례적으로 급하게 진행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달 뒤 열리는 정례 회의에 방산 관련 안건이 이미 포함돼 있었는데도 회의 하루 전날 급하게 일정을 통보한 점 등이 통상 정부 부처가 주관하는 회의 소집 절차와는 달랐다는 것이다.
특검팀은 이르면 다음주 중에 장 전 실장을 불러 윤 전 대통령이 방산공관장 회의 개최를 지시했는지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장 전 실장은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에 임명된 직후 ‘급히 상의할 일이 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등 주호주대사 임명과 출국·귀국 등 전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다만 안보실이 방산 분야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는 만큼, 안보실이 주도적으로 회의를 여는 과정에 절차상 문제가 있었는지는 향후 수사를 통해 판단할 전망이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3월4일 주호주대사로 임명됐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였던 이 전 장관이 같은 달 10일 호주로 출국하자 ‘도피성 출국’이라는 비판이 커졌다. 여론이 나빠지자 이 전 장관은 외교부가 주재하는 방산 공관장 회의 참석을 이유로 11일만에 귀국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 전 장관을 향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해당 회의가 급조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매년 열리는 정례 재외공관장 회의가 한 달 뒤에 잡혀 있었는데도 6개국 대사만 모이는 추가 회의가 갑작스레 열린 점, 국방부·산업부 장관조차 기존 일정으로 인해 초반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점 등이 의심을 키웠다.
특검팀의 수사 선상에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심우정 전 검찰총장(당시 법무부 차관),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 이노공 전 법무부 차관 등도 올라있다. 이들은 이 전 장관 주호주대사 임명 논란의 피의자로 입건돼 있다. 특검팀은 장 전 실장 조사를 시작으로 핵심 피의자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