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8일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공적 입양체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동안 민간 입양기관이 주도해 온 국내외 입양 절차를 이제부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고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른 이행조치 중 하나는 지금까지 민간 입양기관에서 생산한 기록물을 정부로 이관하고, 입양 기록관을 설립해 안전하게 보존하고 공개하는 일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이 관련 기록물을 수집하고 임시 수장고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입양인 당사자들이 철저하게 배제된 것이다. 입양 기록은 단순한 행정문서가 아니라 입양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뿌리인데도 당사자들의 생각과 의견이 무시됐다. ‘입양기록 긴급행동’의 공동대표인 입양인 김오묘 교수는 “우리 없이 우리에 대해 결정하지 마라”고 항의했다.
역사가 망각되는 사회적 현상 중 하나는 기록이 객관적인 정보로만 인식될 때 발생한다. 사람의 모습이 지워진 기록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건 무미건조한 숫자와 문자의 조합뿐이다. 이러한 기록들로 가득 찬 기록관에서 살아 있는 역사를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행정 기관이 기록관 설립을 독단적으로 주도할 때 나타나는 흔한 현상 중 하나다.
사람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역사적 당사자의 몸에는 기록물에 미처 수록하지 못한 인간적인 경험과 진실까지 담겨 있다. 이러한 경험과 진실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 역사는 다시 한번 생동감 있게 살아난다. 우리 사회에서 기억의 문제가 중요해진 이유다. 기억이 없었다면 위안부의 역사도 존재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망각에 저항할 때 역사적 비극은 반복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둡고 아픈 역사를 숨기지 않고 정성스럽게 살펴보고 연구하며 재현하려는 이유는 과거의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를 구원하는 것 또한 사람들 몸에 각인된 기억의 힘이다. 5·18민주화운동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 덕분에 12·3 불법계엄을 저지할 수 있었고, 4·16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는 조금 더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가 입양 기록을 모으고 연구하며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회가 지속되는 한 입양도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입양 절차를 국가가 책임지도록 법률로 정한 건 옳은 일이다. 하지만 법만으로 우리 사회에서 입양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순 없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에게는 부모만큼이나 사회 전체의 관심과 노력이 중요하다.
해외 입양인은 우리 사회가 책임지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이것은 우리가 숨길 수 없는, 아픈 과거의 역사다. 그들이 돌아와 입양 기록 속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은 현재 우리의 역사다. 우리가 두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보살피는가에 따라 입양의 새로운 역사가 펼쳐질 것이다.
많은 해외 입양인들이 “입양 기록은 트라우마의 현장”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준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조심스럽게 지난 역사를 드러내고 숨겨진 진실과 대면해야 한다.
그렇게 해외 입양의 역사가 시민들 사이에서 공공의 기억으로 자리 잡아야 역사적 트라우마는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다. 이것은 입양인들이 시민들과 함께 입양 기록관 설립 사업에 중요한 주체로 참여할 때 가능하다.
김태현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정보·기록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