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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앞에서 멈춰 선 마음

입력 2025.09.09 20:53

수정 2025.09.0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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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아내의 생일에 꽃다발을 선물하고 싶었다. 새벽에 찾은 꽃집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키오스크 앞에서 결제하지 못한 채 꽃을 들고나왔다. 할아버지는 영업시간이 되어 다시 찾아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현금을 지불했다. 신문 기사에서 읽은 이야기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무인 카페 키오스크 앞에서 “커피 한 잔만…”이라며 지나가는 이에게 도움을 청한 노부부의 사연이 있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따뜻한 커피를 건네받은 노부부는 만족해했지만, 나는 편리한 기술 뒤에 숨겨진 고령자의 불편함을 보았다.

영국의 노인자선단체 ‘에이지UK’가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고령층에게 꼭 필요한 기술은 세 가지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 숫자를 이해하고 다루는 ‘수리력’, 그리고 온라인 서비스와 디지털 환경에 자신 있게 참여하는 ‘디지털 기술력’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력은 음식 주문, 온라인 구매, 대중교통 이용 등 생활의 단순한 영역에서부터 은행 업무, 공과금 납부, 병원 예약, 복지 서비스 신청 등 복잡한 서비스 영역까지 우리 삶에 필수적인 능력이 되었다. 디지털 환경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그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꽃집 할아버지와 카페 노부부의 사례를 흔히 본다. 2024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을 100으로 보았을 때, 고령층은 70.7%로 장애인, 저소득층, 농어민을 포함한 4대 정보 취약계층 중 가장 낮았다. 서울시 조사에서도 65~74세 고령층 중 절반만이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있었고, 그중 상당수는 ‘뒷사람 눈치가 보인다’ ‘선택 항목이 어렵다’는 불편을 호소했다. 디지털 기술력은 고령층에게 매우 도전적인 능력이다.

식당 입구에서 키오스크 주문을 하지 못해 머뭇거리고, 병원 출입구에서 QR 체크인을 못해 당황하고, 온라인 신청만 가능한 복지관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어르신. 이 디지털 장벽은 일상에서 작은 좌절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내고, 이 좌절이 쌓이면 결국 “나는 할 수 없다”는 무기력에 빠진다. 노인 실태조사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기기를 다루지 못하는 노인은 건강 정보 접근이 제한되고, 사회적 고립감도 커진다. 이러한 사회적 고립은 자기 체념을 더욱 강화해 악순환이 심화된다. 반대로 디지털 활용 능력을 갖춘 노인은 사회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삶의 만족도가 높다.

고령층이 디지털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복지관과 지자체는 스마트폰 사용, 키오스크 주문, 영상 만들기 등 다양한 교육을 제공한다.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사진을 공유하는 경험은 디지털 기기를 친숙하게 만든다. 가족, 친구를 포함해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 실생활에서 바로 쓸 수 있는 도구를 익히다 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렇게 교육과 경험, 학습 의지가 어우러질 때 고령층의 디지털 기술력은 향상된다.

디지털 기술은 공동체 안에서 모두가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이 세대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QR 체크인이나 앱 결제가 고령층에게 좌절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도와드릴까요? 같이 해볼까요?”라는 포용의 말이다. 디지털 기술은 세대를 가르는 벽이 아니라 손주와의 영상통화처럼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따뜻한 손길이 모두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든다.

결국 고령층의 디지털 기술력은 개인만의 숙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과제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 고령층의 디지털 역량을 높일 때, 누구나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사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김기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김기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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