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긋는 국가 | 박정욱 지음 지식프레임 | 584쪽 | 2만9000원
수천년 왕정의 사슬을 벗어나 새로 ‘민주공화국’이라는 옷을 입은 지 100년도 되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을 가리켜 해외에선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라고 칭한다. 지난해 말 한순간에 모든 것이 뒷걸음 칠 위기에서 대한민국은 그동안 키워온 민주주의의 근육과 골격이 거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중동은 왜 싸우는가>를 썼던 저자는 이번 책에서 한국인의 민주주의 체형이 어떻게 발달해왔는지 그 경로를 되짚어보며 시각화한다.
이를 위해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와 비교를 시도하는데 그 대상은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4개국이다. 식민지를 거쳐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해 공산화되지 않은 아시아 국가라는 공통점에서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저자가 사용한 비교의 키워드는 ‘정체성의 선(線)’이다. “너는 우리가 아니다”라고 구성원 사이에 갈라놓는 선 말이다. 인종이나 종족일 수도, 종교와 문화일 수도, 정치적 세계관의 차이일 수도 있다. 힌두와 무슬림의 대립 구도로 갈라진 인도, 내부의 분리주의와 이를 억누르는 군부세력이 기득권이 된 파키스탄, 강화된 지방자치로 법질서가 파편화된 인도네시아, 종족 간 세력 균형이 균열을 내며 갈등을 빚어내는 말레이시아. 익숙한 나라지만 상대적으로 낯선 이들 국가의 근현대사를 우리 역사와 비교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재해석한다.
정체성의 선으로 여러 갈래 나뉘어진 다른 국가와 달리 한국은 오랜 중앙집권체계 아래 하나의 민족이라는 개념이 일찌감치 자리 잡았고 이것이 발전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우울한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고 저자는 우려한다. 유튜브 등 SNS 환경에서 강화되는 ‘정치적 부족주의’이다. 이념적 딱지 붙이기를 통해 배제와 혐오를 낳는 정체성의 선은 시대의 뉴노멀이 되어 우리 민주주의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