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켜요
명수정 글·그림 달그림 | 40쪽 | 2만1000원
책은 아이의 삐뚤빼뚤 글씨로 시작한다. “내가 켜면 아빠는 꺼요.” 다음 장에서도 아빠는 자꾸자꾸 끄는 존재다. 이쯤 되면 이 아빠는 분명 장난기 많은 청개구리 아빠가 분명하다.
‘내가 놀이를 켜면 아빠는 ○○을 꺼요.’ 여기 빈칸에 들어갈 말을 떠올려보자. 힌트를 주자면 방해나 저지가 아니다. 너무나 사랑스럽게 아빠가 끌 수 있는 것. 정답은 ‘그만’이다. “내가 놀이를 켜면, 아빠는 ‘그만!’을 꺼요. 더! 더! 더!”
아이가 꿈을 켜면, 아빠는 이번엔 무엇을 끌까. ‘깜깜함’이다. 이유는 꿈이 반짝반짝 빛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날마다 꺼요. 거리가 빨강을 켜면, 아빠는 천천히를 꺼요. 달려가요.” 눈치챘는가. 청개구리 아빠의 정체는 바로 소방관이다. 그래서 책을 관통하는 색도 ‘빨강’이다. 알록달록 형형색색 그림마다 자그마한 빨간색 소방차가 그려져 있고, 모든 그림의 시작점이 소방차와 빨간 밧줄이었던 건 그래서였다.
“누군가 뜨거움을 켜면, 아빠는 무서움을 꺼요. 뛰어들어요.”
몇년 전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이 이 이야기 속 아빠다. 작가는 누군가의 소중한 아빠였을 그를 생각하며 쓰고 그렸다. 숭고한 헌신과 사랑을 순수한 아이의 시선으로, 표현으로 담아냈다.
‘뛰어들어요’ 다음에 놓인 ‘그리고…’라는 세 글자. 넘길 수 없을 것 같은 페이지를 넘기면 슬픔 대신 따뜻하고 아름답게 완성된 동그란 세상이 펼쳐진다. 빨간 밧줄이 단단하게 그 세상을 감싸고 있다.
“우리를 켜요… 세상을 켜요.” 매일매일 무언가를 끄던 아빠는 그렇게 소중한 것을 ‘켜는’ 아빠로 모두의 가슴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