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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빚’에 기댄 정부, 재정 흔들린다

입력 2025.09.14 21:30

수정 2025.09.14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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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까지 정부가 한국은행에서 빌린 대정부 일시대출 누적액은 145조원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130조원보다 크게 늘었다. 최근 몇년간 정부는 재정집행 속도와 세입 부족을 이유로 ‘한은 마이너스통장’을 과거보다 자주 사용해왔다. 올해는 두 차례의 예상치 못한 추경이라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중앙은행 차입이 상시적 수단으로 굳어진 현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법은 원칙을 분명히 한다. 국고금관리법과 한국은행법은 정부가 필요할 때 한은 차입을 허용하지만,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증권 발행을 우선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역시 일시대출은 초단기 유동성 보완에만 한정해야 하며, 상시적 조달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한은 일시대출은 긴급 상황을 위한 안전판이지, 구조적 부족을 덮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일시차입은 재정 취약성과 세입 관리 실패를 은폐하는 편법으로 악용되고 있다. 국고금관리법이 회계연도 내 상환을 원칙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낙관적 세수 전망과 허술한 예산 편성이 반복되며 부족분을 한은 대출로 메우는 일이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도 국세 수입이 예산치보다 수십조원 부족했으며, 그 부담은 중앙은행 차입으로 전가됐다. 국민 눈에는 정부의 허점을 감추는 도구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자 부담도 무겁다. 올해 4월 기준 일시대출 잔액은 71조원을 넘어섰고, 이자 비용만 446억원에 달했다. 대출 이자는 단기 통안증권 수익률에 가산금리를 더하는 방식으로 산정된다. 금리 수준이 높아질수록 정부의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에 따른 간접비용도 만만치 않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문제점은 더욱 뚜렷해진다. 유럽중앙은행은 조약에 따라 회원국 정부에 대한 직접 대출을 금지한다. 미국 연준 역시 재무부에 직접 신용을 제공하지 않고, 국채시장을 통한 조달만 허용한다. 일본은행도 국채를 직접 인수하거나 직접 자금을 대출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필요할 때는 의회의 의결을 거쳐 환매 목적의 국채를 인수할 수 있을 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은 중앙은행 대출 남용이 인플레이션과 금리 왜곡, 독립성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누차 경고했다. 국제결제은행 역시 단기자금 부족조차 시장에서 직접 조달하고 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정부의 책임성과 중앙은행 독립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은과 금융통화위원회의 책무 또한 가볍지 않다. 합법적 요건 충족만을 이유로 차입을 마치 자동적으로 허용하는 태도는 사실상 책임 방기다. 법정 한도가 존재한다 해도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견제와 공개 장치 역시 부족하다. 중앙은행은 정부의 편의에 따라 움직이는 ‘자판기’가 아니라, 통화정책 독립성을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승인 사유와 조건을 더욱 엄격히 설정하고, 국회 보고 체계를 한층 강화하는 책임 있는 운영이 필요하다.

해법은 명확하다. 정부가 단기자금이 필요하다면 한은이 아니라 시장에서 조달해야 한다. 재정증권과 단기국채 발행을 확대해 공개적으로 자금을 모으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시장 원리에 따라 금리와 수급이 조정되고, 국채시장 활성화와 수익률 곡선 정상화에도 기여한다. 무엇보다 정부 재정 상황에 대한 시장의 평가와 견제가 자연스럽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한다. 다른 선진국들은 안정적으로 국고 수급을 관리하고 있는데, 우리만이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해 한은 일시차입금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은 관료들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기재부의 일시차입 남용은 재정적자와 세수 부족을 드러내기 싫어 되풀이해온 낡은 습관이다. “어차피 한국은행이 빌려주겠지”라는 안일한 인식은 예산 편성과 집행의 긴장감을 무너뜨리고, 세입 예측의 정확성과 지출 효율성마저 떨어뜨린다. 이런 관행은 시간이 갈수록 재정 건전성을 약화하고, 정부 신뢰를 잠식하며, 경제 전반의 위험 요인을 확대한다.

반복되는 ‘분식 아닌 분식’을 멈춰야 한다. 정부와 한은은 일시차입을 극히 제한적 예외로만 인정하고, 대출 한도를 줄이며, 실시간 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 재정증권과 단기국채 발행을 통한 시장 조달을 원칙으로 삼고, 국회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더 이상 책임 회피와 임시방편으로 시간을 벌 수는 없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신뢰와 민주주의 원칙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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