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이 지난달 8일 서울 서초구 이명현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12·3 불법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17일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상대로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의 직무유기 의혹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특검은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이른바 ‘체포조 명단’을 폭로한 지난해 12월6일 국회 정보위 보고 상황에 주목해 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특검은 이날 국회를 방문해 오후 4시부터 김 원내대표를 상대로 조 전 원장의 직무유기 혐의 등을 조사 중이다. 조 전 원장은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계엄 선포 계획을 약 1시간30분전쯤 미리 알고도 국회 정보위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국정원법 15조는 ‘국정원장은 국가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한 경우 지체 없이 대통령 및 정보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특검은 김 원내대표에게 계엄 당시 조 전 원장으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이 있는지, 조 전 원장이 국회 보고 등 책무를 인식하고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볼 만한 정황이 있는지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특히 홍 전 차장이 지난해 12월6일 국회 정보위에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번 기회에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체포조 명단도 있었다”고 폭로한 경위를 김 원내대표에게 물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원내대표는 당시 홍 전 차장이 요청한 보고 차원의 면담에 정보위 야당 간사인 박선원 민주당 의원 대신 참석했고, 면담이 끝난 뒤 홍 전 차장의 보고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조 전 원장은 당시 홍 전 차장이 국회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뒤늦게 보고를 위해 정보위 면담 자리에 참석했다. 면담 직후에는 “대통령이 국정원에 정치인 체포를 지시한 적 없다” 등 홍 전 차장의 주장을 반박하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했다.
특검은 조 전 원장이 자발적으로 면담에 참석한 이날 상황과 계엄 당일 상황을 대비해서 보고 있다. 이날 면담이 신성범 정보위원장과 김 원내대표, 정보위 여당 간사인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만 참여해 비공개로 진행된 점 등에 비춰보면, 조 전 원장은 정보위 개의 여부나 보고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계엄 당일 상황을 국회에 보고했어야 한다는 게 특검의 주장이다.
조 전 원장은 계엄 당일 윤 전 대통령이 일부 장관들에게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등 임무가 적힌 문건을 나눠줬던 대통령 집무실,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가 열렸던 대접견실 상황을 모두 지켜봤다. 특검은 국무위원이 아닌 조 전 원장은 언제든 정보위에 유선으로라도 보고할 수 있었다고 본다. 조 전 원장은 이날을 빼면 과거 국무회의에 참석한 적이 없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은 국정원이 지난해 10월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과 관련해 정보위에 유선으로 보고한 뒤 관련 내용을 공개한 점에도 주목해, 조 전 원장이 계엄 당시 의도적으로 보고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검은 이 밖에도 계엄이 아닌 다른 사안과 관련해 조 전 원장이 정보위에 보고한 사례 등을 김 원내대표에게 물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26년간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고 정보위에서 국정원 개혁 관련 입법 활동을 다수 해온 김 원내대표에게 국정원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 책무 등에 대해서도 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날 추경호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 등이 연루된 ‘국회 계엄 해제 의결 방해’ 의혹과 관련해서도 조사할 계획이다. 추 전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계엄 당시 의원총회 소집 장소를 세 차례 변경해 의원들이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검은 김 원내대표를 상대로 계엄 당시 국회 안팎 상황을 파악하는 작업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