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양말
한 짝 루시아나 데 루카 지음·줄리아 파스토리노 그림 | 문주선 옮김 | 여유당 | 40쪽 | 1만7000원
빨래를 하고 나면 양말 하나 홀로 남을 때가 있다. 집 구석구석을 찾아도 사라진 한 짝은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여기, 태어날 때부터 함께였던 양말 알록이와 달록이가 있다. 이 둘의 생이별도 어느 날 세탁기 속에서 갑작스레 찾아왔다.
달록이는 새카맣고 구불구불한 터널을 떠내려가던 중 눈을 뜬다. 알 수 없는 진녹색 이물질, 시커멓고 징그러운 털 뭉치 옆에서 하염없이 알록이를 찾는다. 혼자가 된 가엾은 존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진다.
강을 건너고 바다에도 휘말린 달록이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다. 검은색 땅, 고여서 썩은 듯한 어두운 강물,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탁한 바다가 그려진 삽화를 넘길 때마다 달록이의 좌절과 슬픔이 함께 느껴진다. 달록이가 더 이상 알록이를 찾는 목소리마저 낼 수 없을 때, 어느 섬에 도착한다.
그곳엔 짝을 잃고 홀로 남은 양말들이 가득하다. 붉은 하트 무늬 양말, 푸른 별이 박힌 양말… 이들 중엔 요리사도 있고 우체부도 있고 또 커플도 있으며 홀로 즐겁게 살아가는 양말들도 있다. 이곳에서 달록이도 온전한 삶을 되찾는다. 줄리아 파스토리노는 혼자라도 밝게 빛나는 형형색색의 양말들을 앙증맞게 그려냈다. 부드럽고 둥근 선, 화사하면서 따뜻한 색감은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 여운을 남긴다.
아르헨티나 작가 루시아나 데 루카는 짝 잃은 양말들이 서로 기대어 만드는 행복한 일상을 이야기한다. 평생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던 짝을 잃었다고 삶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며, 그 상실의 빈자리 또한 나를 이해하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언젠가 메워진다는 희망도 전한다.
홀로서기에 성공한 달록이는 이제 섬에 도착한 새 친구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달록이가 만날 또 다른 양말은 누구일까.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 만남을 향한 기대와 설렘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