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깊은 뮤지션의 신보를 듣기 전, 주문을 외운다. 야발라바히기야는 아니다. 어차피 덩크슛 못한다. 그저 “음반이 좋기를” 하면서 기도한다. 연재는 매주 써져야만 한다. 그러나 일주일마다 땔감을 찾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훌륭한 음악은 지금도 창조되고 있다. 매일 업로드되는 10만 곡 안에 멋진 음악이 없을 수 없다. 즉,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개인이 다 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번주는 다행이다. 권나무가 신보 <삶의 향기·사진>를 냈다. 그가 쓴 앨범 설명을 요약해서 듣는다. “많은 게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감각합니다.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 사이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은 부산물이지 목표가 아니다. 권나무는 행복이 목표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노래한다. 그는 풍경의 소리를 잘 듣는 음악가다. 잘 듣는다는 것은 마음을 내어준다는 것. 그가 마음을 건넨 풍경이 첫 곡 ‘그렇게, 나도 모르게’에 하나둘 배어 있다. 제목 그대로다. 그의 음악은 그렇게, 듣는 이도 모르게 쓸쓸해서 더 잊히지 않는 서정을 피워 올린다. 담백한 피아노 연주만으로 곡을 이끄는 ‘가까이에’의 노랫말이 특히 그렇다. “지나고 나면 좋은 일이 많았는데/ 난 늘 무언가에 휩싸인 채/ 손에 닿는 기쁨과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받아 안으면서도 눈 마주칠 수가 없었네”
예술가란 곧 관찰하는 자다. 한데 선행되어야 할 과정이 있다. 관심이다. 무언가에 관심을 두게 되면 관찰하게 된다. 이 관찰을 습관화하면 대상과 관계가 맺어진다. 예술가는 이 관계에서 진실을 캐내는 자다. 그들은 대부분이 무심히 지나쳤을 풍경 속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음을 본능적으로 안다. 온갖 당위의 깃발이 내지르는 구호 아래에서 숨쉬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추천한다. 권나무의 <삶의 향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