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잘 들어 양동(陽洞)이라 불린 동네가 있다. 서울 남산 언덕배기. 전후 판잣집이 즐비했고, 불이 나 전소되면 다시 집을 지어 올리던 질긴 주민들이 있었다. 성매매 집결지와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세방, 가난한 가족들의 집이 있던 곳은 이제 빌딩 숲속 쪽방촌이 됐다. 여름엔 사방 빌딩에서 나오는 열기에 찜통이고, 겨울엔 양동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그늘진다.
2019년, 쪽방을 헐고 빌딩을 짓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주민들은 불안했지만 어디서도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 무렵 인근 시장엔 ‘후암동에 쪽방촌 웬 말이냐, 절대 반대’ 현수막이 걸렸다. 주민들을 근처 고시원과 상가로 흩어 이주시킨다는 계획 때문이었다. 정작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다.
천덕꾸러기를 만든 건 법이었다. 한국의 정비법은 기묘하다. 업무용 빌딩을 지으면, 그 땅에 세입자가 살아도 임대주택을 지을 의무가 없다. 수백 명이던 주민은 법의 언어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더 많은 개발이익을 노린 쪽방 건물주들은 리모델링, 붕괴 위험을 핑계로 주민을 내쫓았다. 2019년 471명이던 주민은 2021년 230명으로 반 토막 났고, 퇴거는 이어졌다.
그러자 주민들이 나섰다. 2021년, ‘양동쪽방주민회’를 꾸렸다. 나이 든 주민들이 저린 다리를 끌고 시청과 구청을 찾았다. 기자회견도, 면담 요청도, 정치인 뒤를 쫓는 피켓 시위도 서슴지 않았다. 2021년 쪽방 폭염대책 점검 차 양동을 찾은 오세훈 시장에게 “더위도 문제지만, 재개발로 거리에 나앉게 생겼으니 대책을 내달라” 호소했지만 시장은 공연히 골목에 소방수만 뿌리고 떠났다. 그날 기자들이 혹시라도 목소리를 담아주길 기다렸지만 헛수고였다. 그래도 주민들은 버텼다. 그동안 쫓겨났던 집들을 곱씹으며, 적법한 이주 보상은 고사하고 쓴소리 뒤에 건네받은 몇푼의 모욕을 떠올리며, ‘여기서마저 쫓겨나면 더 갈 곳이 없다’는 절박함으로 견뎠다.
2025년 9월. 쪽방은 철거가 한창이지만, 바로 옆 새 임대주택에 주민들은 끝내 입주했다. 14㎡ 원룸. 평생 집으로 삼기엔 작지만 싸워서 얻었기에 값지다. 주민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이곳엔 또 다른 빌딩이 들어섰을 것이다. 이 집은 정부의 선물이 아니라 주민들이 쟁취한 권리다.
그러나 모두가 이날을 맞이하진 못했다. 입주한 이는 140명 남짓. 이미 세상을 떠난 이웃도 있고, 임대주택 추첨은 했지만 병상에 누운 이도 있다. 갖은 퇴거 압박에 양동을 떠나 또 다른 쪽방을 전전하는 이들도 있다.
양동의 승리는 달콤하기보다 쓰라리다. 비로소 이름처럼 해 드는 창을 가졌지만 이미 떠난 이웃들을 떠올리면 웃을 수만은 없다. 주거가 권리라면, 왜 이렇게 늦게, 왜 이토록 험난하게 쟁취해야만 했을까. 양동 주민들은 바란다. 길 건너 동자동 쪽방촌도 어서 새벽이 지나 햇살이 닿기를.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