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이 화두인 제22대 국회에 세 가지가 없다. 위태롭기 짝이 없는 언론 현실에 대한 분석이 없다. 개혁 입법이 초래할 사태에 대한 검토가 없다. 제도 개선 목표와 방법을 두고 여론 수렴이 없다. 개혁하자면서 정작 없애야 마땅한 제도는 그대로 두고, 장차 남용될 만한 제도를 놓고 설왕설래할 가능성만 크다.
언론개혁을 둘러싼 담론에 세 가지가 뚜렷하다. 진영마다 고유한 피해의식이 뚜렷하고, 당파적으로 동원하려는 전략이 노골적이며,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 따지는 계산은 치밀하다. 관심 있는 공중이 납득할 만한 청사진은 없다. 우당탕 개혁안이 확정되면 누구에게 유리한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차분히 진행해야 한다. 개혁이란 제도 개선이고, 제도 개선에는 많은 것들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제도를 망치는 저주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열심히 망치는 일들도 개혁하자는 취지로 벌이는 짓인데, 누구도 알 수 없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데 그 비극성이 있다. 그 성과가 미국 시민은 물론 개혁을 추진한 세력에게 유리한 결말이 될지 알 수 없다.
우리 시민이 언론 때문에 겪는 고통은 뉴스의 품질과 품격이 현저히 낮은 데서 출발한다. 저질 뉴스에 고통받는 시민은 물론 관련 당국도 이 문제를 놓고 함께 고민하는 일은 당연하다. 이 사안은 누구보다 먼저 저질이라며 비난받는 언론인이 분발해서 개혁안을 내야 할 일이고, 그를 고용한 언론사부터 제대로 된 보상구조를 갖추어야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징벌이든 배액 배상이든 처벌을 강화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처벌이라면 우리 언론은 이미 과도하게 받고 있다. 집요하고도 치사한 방식으로 그렇다. 2022년 대통령 관저 선정 보도를 놓고 대통령실이 한겨레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일부터, 2023년 한동훈 장관 개인정보와 관련한 경찰의 MBC 압수수색, 방심위의 인터넷 언론사 심의, 검찰의 뉴스타파 압수수색, 2024년 ‘바이든 날리면’ 관련 소송과 방심위의 과징금 결정, 방심위의 대통령 관련 영상 접속차단, KBS의 MBC에 대한 정정보도와 손해배상 소송 등만 봐도 그 성격을 알 수 있다.
언론개혁은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법부터 개정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형법에서 폐지하고, 허위사실 명예훼손죄를 반의사불벌죄에서 친고죄로 변경하고, 공인에 대한 비판보도의 면책을 폭넓게 인정하는 보완적 입법을 해야 한다. 이미 정략적으로 남용되는 제도를 두고 무슨 징벌이니 배액 배상이니 주장하는 말은 방향이 틀려도 한참 틀렸다.
‘미국에 900억원이 넘는 징벌적 배상을 선고한 사례가 있다’고 말들 한다. 남의 나라 판결이라지만 얼핏 듣기에도 과도하지 않은가. 명예훼손 소송에서 널뛰기 배상 판결을 지양하자는 게 뜻있고 사려 깊은 미국 진보적 학자들의 견해다. 이 분야의 대가인 로드니 스몰라는 ‘추정된 피해’가 아닌 ‘현실적 피해’만을 산정해서 배상하되, 징벌적 배상은 폐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우리는 지금 미국에서도 개혁 대상으로 비판받는 제도를 개혁하자며 도입하려 애쓰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민사 배상이라서 더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도 많이 인용된다. 이미 악용되는 형사처벌 조항과 각종 심의제도를 두고 이렇게 말하는 게 타당한지 알 수 없지만, 민사소송은 남용에도 취약하다. 고액 변호사를 고용할 자원이 충분하고, 시간도 남아돌고, 복수심이 강하며, 정파적으로 동기화된 자들이 민사소송으로 언론을 괴롭힐 가능성이 크다.
다시 묻는다. 개혁하자면서 왜 고통스러운 언론 현실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하지 않는가. 왜 제도 남용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가. 중차대한 사안을 놓고 어째서 폭넓게 의견을 듣고 정밀하게 제도를 설계·진행하지 못하는가.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