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년 하반기부터 5년간 6조5000억원 투입
초고도·고도 환자 중심으로 간병비 급여화 추진
월 200만~267만원 → 60만~80만원으로 낮아져
서울 명동 로얄호텔서울에서 22일 열린 ‘의료중심 요양병원 혁신 및 간병 급여화’ 공청회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정부가 내년 하반기부터 의료적 필요도가 높은 중증 이상의 환자의 간병비 부담을 줄여 나가기로 했다. 2030년까지 5년간 약 6조5000억원을 투입해 환자의 간병비 본인부담을 현재의 30% 수준까지 낮춘다. 현재 월평균 200만~267만원 수준인 간병비가 60만∼80만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22일 보건복지부가 밝힌 의료중심 요양병원 혁신 및 간병비 급여화를 위해 필요한 비용. 보건복지부 제공
보건복지부는 22일 ‘의료중심 요양병원 혁신 및 간병비 급여화 추진방향’ 공청회를 열고 정부가 추진 중인 밑그림을 내놨다. 현재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라 개인이 100% 부담해야 하는 간병비를 건보 급여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우선 의료필요도가 높은 환자를 중심으로 간병비 급여화를 추진한다. 환자분류기준 상 초고도(생명 유지 장치가 필요한 상태), 고도(생명에 위협은 있으나 비교적 안정화 상태) 환자가 주 대상이고, 치매·파킨슨병 등 중증 환자 약 20%도 포함된다. 2023년 12월 기준 전국 요양병원은 1391곳(병상 26만4000개)으로, 환자는 약 21만5000명이다. 정부는 의료 필요도가 높은 환자는 약 8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환자를 수용할 의료중심 요양병원은 내년 상반기 지정을 시작해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1단계에서 200개 병원·4만 병상, 2단계에서 350개 병원·7만 병상을 확보한 뒤, 최종적으로 500개 병원·10만 병상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선정 기준은 중중도 이상 환자가 일정 비율보다 높아야 하고 병동, 병실, 병상 수 역시 일정 수준을 충족해야 한다. 예를 들어, 1개 병실에 적정 병상은 4개라는 식이다. 총 의료수익에서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일정 수준을 넘기면 불이익을 받게 된다.
22일 보건복지부가 밝힌 단계적 의료중심 요양병원 전환 계획. 보건복지부 제공
간병인력은 직접 고용 또는 파견 형태를 모두 허용하되, 환자 4명당 1명 이상을 배치해야 한다. 요양보호사, 생활·활동지원사 등 자격요건도 갖춰야 한다. 외국인도 한국어 능력을 평가받은 뒤 간병인력이 될 수 있다. 병원은 이들을 지도·교육할 전담 간호사 1명을 배치해야 한다.
정부는 꼭 필요한 환자에게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객관적인 환자분류 판정체계도 도입할 예정이다.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환자 등급을 매기는 기존 방식을 유지하면 환자 상태를 부풀려 의료중심 요양병원에 선정되려고 하는 유인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순히 콧줄을 삽입해 고도 환자로 분류하는 식이다.
이를 막기 위해 의료기관평가인증원 같은 외부 기관이 신규 및 기존 입원환자의 의료필요도를 주기적으로 판정해 병원 자체 등급과 비교한다. 판정 불일치가 반복되면 의료중심 요양병원 선정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한다. 대신 의료필요도가 높은 환자에 대한 의료 수가를 인상하고 필수적인 고비용·고난도 행위, 치료재료, 약제는 별도 보상 항목에 추가하기로 했다.
서울 명동 로얄호텔서울에서 22일 열린 ‘의료중심 요양병원 혁신 및 간병 급여화’ 공청회에 참석한 이중규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이 발제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간병비 급여화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현실성 부분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안병태 요양병원협회 부회장은 “정부안대로면 6인실 병실을 4인실로 줄여야 한다는 것인데 병상 33%가 줄어들게 되는 셈”이라며 “이대로면 성과보상, 수가 인상을 해도 요양병원은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또 “의료중심 요양병원이 500개 정도가 선정되는데 그러면 나머지 800여개의 요양병원들은 어떻게 하란 것이냐”고 말했다.
김기주 대한병원협회 기획부위원장은 “의료중심 요양병원이 500개여야 하는 근거가 의문이다”며 “당장 비용적인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추후 확대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기종 환자연합 대표는 “간병비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했는데 실질적으로 환자 부담은 조금 줄어드는 반면, 500개 요양병원은 수가 인상만으로 5년간 8억원씩을 더 지원받는 셈”이라며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어서 환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날 공청회에서 모은 의견을 반영한 추진방향을 오는 25일 건강보험 정책 최고 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보고할 예정이다. 이후 전문가 자문단을 구성해 세부적인 추진 방안을 수립하고, 건정심 심의를 거쳐 올해 12월 최종안을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