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만들기>는 2021년에 출간된 책이다. 저자는 9개 비수도권 거점국립대에 서울대에 비견할 수준의 투자를 해서 실질적으로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10개 만들자고 한다. 서울대가 10개 생겨나면 학생들의 대학 입시를 향한 극한적인 경쟁 압력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립대 체제를 벤치마킹해 거점국립대 간의 연계 협력을 강화하면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학계의 대학개혁론 중 하나였던 ‘국립대학 네트워크’ 논의를 ‘서울대 10개’라는 선명한 구호로 엮어냈다.
사립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새 정부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교육정책의 상징이 됐고, ‘5극 3특’이라는 초광역 메가시티에 기반을 둔 지역균형발전 정책과도 짝이 잘 맞았다. 권역의 혁신을 거점국립대가 이끌 것이다.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3월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거점국립대 2개-대학병원 1개-국책연구기관 1개-산업클러스터 1개를 엮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초광역화, 혁신클러스터, 대학교육의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그 자체로는 완전한 생태계처럼 보인다.
서울대 10개 만들어도 좋다. 비수도권 대학에 집중투자를 하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다. 그런데 살펴봐야 할 현실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복잡다단하다. 전체 대학 가운데 국공립대는 고작 15%이고, 4년제 대학으로 범주를 좁혀도 국공립대는 20%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80%의 교육을 담당하는 사립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2010년대를 경유하며 등록금 인상이 억제되고,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의 사립대들은 학령인구 감소 속에서 재정 수입이 감소했다. 결손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보조금이나 교부금 형태로 보충되나, 상당 금액은 학생들의 국가장학금으로 지정되는 상황이다.
사립대가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정부의 다양한 형태의 구조조정 평가에서 이른바 3대 지표(신입생 충원율, 재학생 충원율, 취업률)에 얽매이는 상황은 크게 변함이 없다. 정권에 따라 교육당국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지방 사립대들은 지표를 깎아 먹는 학과들을 모집 중지를 통해 폐과하는 방향을 잡았다.
인문학과 사회과학계열 학과들이 축소되는 것은 차치하고, 인공지능(AI)과 첨단 과학기술 주도 혁신 시대의 핵심 자산으로 모두 다 알고 있는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전공 가운데 기초학문이라 볼 수 있는 자연계열 학과들이 더 빠르게 축소되었다. 지역의 혁신생태계를 위해 자연과학은 필요하지만, 개별 사립대 관점에서는 현재의 상태에서 고정비(설비 투자 및 교원 임용의 어려움)는 많이 들고 수익(신입생 충원율, 재학생 충원율)은 크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이 역전되기는 쉽지 않다. 재정이 탄탄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비용 절감’ 노선을 택하기 쉽다. 지방 사립대들이 최근 10년간 전문대 학과들을 늘려온 것도 같은 판단에서 나온 의사결정이라 볼 수 있다.
꼬여 있는 대학체제의 매듭 풀어야
지역의 국립대와 사립대 문제는 제조업으로 치면 제조 대기업과 소부장 기업의 관계와 유사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대기업이 지역에 있어야 브랜드 가치가 형성되는 것이라면, 소부장 기업 생태계가 건전하게 형성되어야 실제로 혁신생태계가 작동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학술장에서 ‘연구’로 ‘승부’를 볼 수 있는 거점국립대가 작동하려면, 지방 사립대가 양질의 고등교육을 제공하는 건전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는 거점국립대와 사립대 간 기능 분업에 대해 둔감하다. 연구자로서 각급 대학 교원들의 역할과 교육의 질적 내용에 대해서도 둔감하다. 서울대 10개를 통한 지역 대학 연구생태계의 낙수효과를 상상할 수는 있겠지만, 애초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배경이 최상위권 입시의 잔혹함이라는 점을 보면 승자독식의 구조가 지역에서만 멈출 리는 없다.
한국의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8% 수준에 그친다. 선진국 가운데 대학을 가장 많이 가는 나라에서 국가의 투자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통해 혁신성장을 위한 지역의 고등교육 투자를 늘리는 데 찬성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기존에 꼬여 있던 대학체제의 매듭을 풀어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단칼에 잘리지 않을 문제이므로 더 많은 목소리를 청취하길 바란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