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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모두가 반장이 되어보는 교실 민주주의

입력 2025.09.22 21:07

수정 2025.09.2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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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 선거를 나갔던 기억이 없네요. 당시엔 교사가 마음대로 지목했어요.” 지난 9월4일, 대통령실에 초청된 한 어린이가 “대통령님은 반장 선거에서 떨어져보신 적 있으시냐”고 묻자 이재명 대통령이 이렇게 답했다. 1964년생인 대통령보다 네 살 아래인 나 역시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담임이 지명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드물게 투표가 이뤄지더라도,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장면처럼 담임의 뜻에 따라 1등이 아닌 아이가 반장이 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투표로 반장을 뽑았고, 당시에는 성적 상위권 학생만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신학기가 시작된 9월, 교실마다 학급 임원 선거가 이어졌다. 라디오에는 “아들이 반장에 당선돼 아이보다 내가 더 뿌듯하다”는 부모의 사연이 소개되기도 했다. 몇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한 초등학교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학급 선거는 어린이들이 자유로운 의사와 공정한 절차 속에서 대표를 뽑아보는 경험입니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 역량과 자치 능력을 기르게 되죠. 성인이 되어서도 후보자의 됨됨이를 보고 선택하는 눈을 키울 수 있습니다.” 담임 지명에서 벗어나 투표로 대표를 선출하는 일은 분명 민주주의 교육의 한 걸음이다.

하지만 현실의 교실 선거는 어른들의 정치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아이가 2~3년 전 겪은 초등학교 반장 선거만 봐도 그렇다. 같은 학원이나 유치원 출신이라는 연고, 외모 이미지가 표심을 흔들기도 했다. “당선되면 쉬는 시간에 게임을 하도록 하겠다”는 황당한 공약이 등장했고, 어떤 아이는 햄버거와 피자를 돌리기도 했다. 특히 서울 강남권에서는 아예 ‘반장 선거 준비 학원’까지 운영되며 연설문 작성, 공약 설계, 표 받는 요령을 코치한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훈련장이 입시 스펙을 쌓기 위한 경쟁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임원을 맡는 학생이 소수에 그친다는 점이다. 대다수 학생은 투표만 하는 데 그치고, 직접 대표를 맡아보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일회성 투표 경험에만 머물고, 학생들은 주권자라기보다 수동적인 역할로 남는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단순히 투표권 행사로만 배우게 된다면, 성인이 된 이후 정치 참여에 대한 인식 역시 좁아질 수 있다.

요즘 학급 규모는 30명도 채 되지 않는다. 반장과 부반장이 맡는 역할도 제한적이고, 교실 운영에서 중요한 것은 청소·분리수거·급식 봉사 같은 당번 활동이다. 그렇다면 당번을 ‘반장’으로 삼아 일주일씩 돌아가며 책임을 맡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 교육의 취지에 맞다. 반장은 감투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봉사라는 점을 어릴 때부터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모든 학생이 고르게 책임을 맡아보고, 민주주의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이나 영국 등 많은 나라에서는 한국처럼 학급 단위 임원 제도가 일반적이지 않다. 전교 대표는 학생회를 통해 선출하지만, 교실 안에서는 필요한 일을 당번제로 분담한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학급 운영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학생이 직책을 독점하는 대신, 모두가 책임을 나누어 맡는 경험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출발선이다.

교실은 작은 사회다. 교실에서 경험한 책임과 봉사가 훗날 민주적 시민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다. 민주주의는 직위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짊어진 책임 속에서 자란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투표 절차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뿌리내린다. 학생들이 이 가치를 공유하며 자랄 때 민주주의는 자연스럽게 일상이 된다.

국민주권을 내세운 정부라면, 교실을 진정한 ‘민주주의 훈련장’으로 바꾸는 변화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작은 교실의 변화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내일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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