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장이 23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에서 ‘불공정거래 행위 관련 사건 1호’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종합병원 원장, 대형학원 운영자 등과 금융회사 전현직 임원들이 공모한 1000억원대 주가조작 사건이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이들은 지난해 초부터 현재까지 약 1년9개월간 법인 자금, 금융회사 대출금 등 1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동원한 주가조작으로 시세차익만 230억원을 챙겼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면 패가망신”을 언급한 뒤 출범한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의 1호 사건이다.
금융위원회 등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에 적발된 작전세력은 거래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통제가 가능하다고 판단된 종목을 표적 삼아 1000억원대 자금으로 시장 유통 물량의 3분의 1을 장악한 뒤 수십개의 계좌를 이용해 고가매수·허수매수 등 수만회에 달하는 가장·통정매매로 주가를 띄웠다.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이 법인 계좌를 주식거래에 사용하거나, 주문 IP(인터넷주소)를 조작했다고 한다. ‘슈퍼리치’ 전주들과 금융전문가들이 온갖 사술을 망라해 벌인 현란한 범죄의 실상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에 적발된 건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국내 증시에서 암약하며 1400만 개인투자자들의 주머니를 털고 있을 숱한 작전세력들에 경고하는 차원에서 일벌백계로 엄단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에 힘을 기울이며 저평가돼 있는 국내 증시를 끌어올리기 위해 ‘코스피 5000’ 목표를 내걸었다. 부동산에 묶인 자금이 생산적인 영역으로 이동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국내 증시가 ‘작전판’이라는 인식이 불식되지 않는 한 본격적인 ‘머니 무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주가조작 엄단’ 의지에 투자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국내 증시는 주가조작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거나 수사가 지연돼 투자자들의 불신을 사왔다. 김건희씨가 23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기고도 처벌받지 않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대표적이다.
합동대응단은 부당이득의 최대 2배 과징금을 부과하고, 즉시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정도로 ‘패가망신’이 되겠는가. 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주가조작에 투입된 원금까지 전액 몰수해야 일벌백계 의미가 있다. 주가조작 수법이 갈수록 고도화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차제에 국내 증시 감시 인력을 대폭 확충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