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띄어쓰기는 언제나 헷갈린다. 문장의 숨을 어디에서 쉬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어쩌면 맞춤법이라는 체계 속에서 가장 까다롭고도 감각적인 규칙일지 모른다. 그런 띄어쓰기 속에서, 나는 천문학자로서 더욱 혼란스러운 단어 하나를 자주 마주한다. 바로 ‘우리 은하’다.
지구, 태양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거대한 고향. 지름만 해도 10만광년에 달하는 이 장대한 별들의 집합을 우리는 ‘우리 은하’라고 부른다. 이 표현에는 나와 당신, 그리고 아직 만난 적 없는 외계 생명체들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존재를 아우르는 따뜻함이 담겨 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은하’에 속해 있다. 그렇기에 이 단어는 유독 다정하고 서정적이다.
그런데 이 다정한 말 앞에서 늘 망설인다. ‘우리 은하’라고 띄어 써야 할까, 아니면 ‘우리은하’라고 붙여야 할까? 놀랍게도 이 문제는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도 정리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우리은하’라고 한 덩어리로 쓰고, 또 어떤 이들은 ‘우리 은하’라고 구분해 쓴다. 심지어 국어사전과 교과서도 기준이 다르다. 국립국어원은 우리 은하라고 띄어 써야 한다고 설명하지만, 정작 교육부 지침은 띄어 쓰지 않도록 규정한다. 무엇이 맞는가? 나는 아직도 확신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라는 단어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 표현 역시 ‘우리 나라’로 띄어 쓰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나라’ ‘우리의 나라’라는 인식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국어사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고유명사로, 붙여 쓰는 것이 옳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지칭할 때는 ‘우리나라’가 맞다. 그러나 외국인이 자신의 고국을 소개할 때는 ‘우리 나라’가 더 자연스럽다. ‘우리’가 그 사람의 공동체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대명사로 기능할 때, 띄어쓰기의 규칙도 달라진다.
이와 정확히 같은 이유로, ‘우리 은하’라는 표현 또한 복잡해졌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인류는 단 하나의 은하, 곧 우리 은하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은하가 곧 ‘은하’였고, ‘우주’였다. 그러니 굳이 ‘우리 은하’인지, ‘우리은하’인지 따질 필요조차 없었다. 그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은 하나뿐이었으니까. 우리는 비좁지만 명확한 우주 안에 살고 있었고, 언어 또한 그만큼 단순했다.
하지만 1923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에드윈 허블은 가을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안드로메다를 망원경으로 응시했고, 그 안에서 우리 은하를 벗어난 별을 찾아냈다. 그 별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도저히 우리가 속한 은하 안에 존재할 수 없었다. 안드로메다는 단순한 성운이 아니라, 우리 은하와 나란히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은하였다. 인류는 그날 밤, 처음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은하가 우주의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다. 우주는,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광활했다.
허블의 이 발견은 ‘은하’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를 바꾸어놓았다. 이전까지 ‘갤럭시’는 곧 ‘우주’였다. 하지만 이제 갤럭시는 ‘우주를 구성하는 여러 집단 중 하나’가 됐다. 별과 가스, 암흑물질이 중력에 이끌려 수천억개씩 모여 만들어진 별의 집단. 천문학자들은 이제 별 하나하나보다 ‘은하’ 단위로 우주를 이해하고 그린다. 마치 생명체를 이해할 때 분자가 아닌 세포를 기본 단위로 삼듯이, 은하는 우주의 세포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포 속에 기생하는 미생물보다도 작은 존재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은하’ 하나만 존재하는 세상에 살지 않는다. 우주는 셀 수 없이 많은 은하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다다. 이 바다에는 무수한 섬들이 흩어져 있고, 우리 은하는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천문학자들은 이런 우주를 ‘섬 우주(Island Universe)’라 부른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속한 이 섬을 ‘우리섬’이라 부를까, ‘우리 섬’이라 부를까? 그들이 사는 섬은 또 그들의 ‘우리 섬’일까? 그런 맥락에서 나는 이 은하를 ‘우리 은하’라 부르는 편이 더 마음이 놓인다. 이 넓은 우주에 수많은 존재가 있다면, 그들 각자에게도 자신만의 ‘우리 은하’가 있을 테니까.
우주는 분명히 넓어졌다. 우리의 생각도 함께 넓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언어는 아직도 과거의 감각에 머물러 있다. 이것은 언어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걸까, 아니면 우리의 게으름을 보여주는 걸까. 이제 우리는 모두 셀 수 없이 많은 은하로 가득한 거대한 바다와 같은 우주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은하 안에 갇힌 비좁은 우주를 말하며 살아간다.
지웅배 천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