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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짚고 가는 동네 사랑방

입력 2025.09.24 21:19

수정 2025.09.2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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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생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짧은 거리는 걸을 수 있고 인지능력도 좋지만,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힘들다. 활기찬 노년을 보내시길 바라는 마음과 달리, 집 근처에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지루함과 무력감을 느끼신다. 차선책으로 데이케어센터의 문을 두드렸지만 ‘장기요양등급’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어머니처럼 공적 돌봄 서비스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온전히 혼자 사회활동을 하기에는 어려움을 겪는 ‘경계선 위 노인’이 많다.

이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고, 이는 급격한 노쇠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고립감은 우울증을 유발하고 치매와 같은 퇴행성 질환을 앞당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기존의 경로당은 남녀가 분리된 채 획일적인 프로그램만 반복하거나, 기존 구성원 중심의 폐쇄적 운영으로 새로운 이들이 융화되기 어려워 대안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초고령사회에 걸맞게 노인들의 사회 참여를 유도하고 삶의 질을 높일, 문턱 낮고 개방적인 커뮤니티 공간이 절실하다. 이는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자, 건강수명을 늘려 미래의 사회적 돌봄 비용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투자다.

일본의 ‘지역 살롱’은 훌륭한 본보기가 된다. 행정이 아닌 주민이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운영하며,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어울릴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러운 세대 교류가 이뤄지고, 촘촘한 사회적 자본이 축적된다. 참여하는 노인은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주인이다. 장소도 특별할 필요가 없다. 행정복지센터, 비어 있는 상점, 개인 주택의 거실까지 어르신들이 지팡이를 짚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랑방이 된다. 함께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것을 기본으로 체조, 취미 생활, 식사 모임 등 원하는 활동을 자유롭게 만들어간다. 국내에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타임뱅크하우스’ 같은 좋은 사례가 있다. 자신의 시간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고, 필요할 때 다른 이의 시간으로 돌려받는 ‘시간은행’ 시스템을 통해 상호 돌봄 관계를 형성하며 지역의 거점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런 공간들은 노인이 살던 동네에서 고립되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활기찬 노년을 보내도록 돕는 훌륭한 ‘지역사회 통합 돌봄’ 모델이다. 2026년 3월 시행될 ‘통합돌봄지원법’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도 이런 공간의 확충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이 공간은 문제가 발생한 뒤 개입하는 사후적 복지가 아닌, 고립과 질병을 예방하는 선제적 복지의 핵심 거점이다. 법이 의료·요양·돌봄 서비스의 연계를 외치지만, 정작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관계를 맺어줄 구체적인 공간이 없다면 통합 돌봄은 구호에 그칠 것이다. 지역 살롱과 같은 고령 친화 커뮤니티 공간이야말로 흩어진 개인과 서비스를 엮어내는 지역사회의 필수 기반시설이다.

내 어머니의 이야기는 곧 우리 모두의 부모님, 그리고 미래의 우리 자신이 마주할 현실이다. 나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내 집처럼 편히 찾아가 담소를 나누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지팡이를 짚고 마실 갈 수 있는 동네 사랑방을 만드는 일에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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