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규하 대구 중구청장 “개인 비판 부적절”
지역 작가들 “조례가 위헌···창작 자유 침해”
대구 봉산문화회관 1전시실에 지난 24일 윤석열 정부의 의료대란을 비판한 것으로 추정되는 ‘동학의국’이 내결려 있다. 현재 1전시실은 폐쇄된 상태다. 대경미술연구원 제공
대구의 한 미술관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을 풍자하는 내용의 미술 작품을 전시했다가 폐쇄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지역 미술계는 “예술 작품에 대한 부당한 검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5일 지역 미술계와 대구 중구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대경미술연구원은 지난 24일부터 내달 2일까지 봉산문화회관에서 ‘내일을 여는 미술, 대구, 미술, 시대정신에 대답하라’를 주제로 특별기획전시를 진행 중이다. 작가 19명이 1·2·3전시실에서 총 50여 점을 선보인다.
봉산문화회관은 그러나 전시 첫 날인 지난 24일 주최측에 작가 A씨가 그린 ‘동학의국’과 ‘똥광’ ‘팔광’ 등 작품에 대한 철거를 요구했다.
‘동학의국’은 윤 전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체 상태로 해부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작품 속 인물의 손바닥에는 왕(王)자가 적혀있고, 특정 신체부위 안쪽에는 건진법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묘사돼 있다.
작품 하단에는 ‘아래 괴수와 무뢰배 놈들이 역병을 여기저기 옮기고 있으니 절대주의할사’라는 글도 적혀있다.
‘똥광’과 ‘팔광’은 각각 윤 전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씨, 이승만 전 대통령을 화투패에 그려 풍자한 작품이다.
주최측인 대경미술연구원은 그러나 작품 철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봉산문화회관도 작가들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지겠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고 전시를 강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구 중구는 해당 작품들이 전시된 1전시실 폐쇄를 지시했고, 이 작품들은 관객들을 만날 수 없게 됐다. 류규하 중구청장이 전시물 소개 자료를 보고 “정치적이라 전시할 수 없다”며 전시실 폐쇄 지시를 내린 것이다.
대구 봉산문화회관 1전시실에 지난 24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씨를 비판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똥광’,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판한 ‘팔광’이 내걸려 있다. 현재 1전시실은 폐쇄된 상태다. 대경미술연구원 제공
중구는 “정치적 목적으로 논란이 빚어질 수 있어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입장이다. 중구청 산하기관인 봉산문화회관 운영 조례에는 ‘종교행사나 정치적 목적의 홍보 또는 행사를 이용한 상품 선전과 판매 등 상업성이 있다고 인정될 때 관장은 회관 사용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중구 관계자는 “(전시를 하는) 작가가 1명이었다면 미리 검토를 했을텐데, 작가와 작품 수가 많다 보니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전시 허가를 내줬다”면서 “조만간 회관측에 조례 준수를 촉구하는 공문을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류 구청장은 “사회를 풍자하는 건 좋지만 개인(윤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이어서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며 “개별 작가의 작품이지만 전시 장소가 개인 운영의 미술관이 아니고 공적인 공간인 만큼 부득이하게 제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구지역 미술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특별전 참여 작가들은 A씨 작품을 대중이 볼 수 없게 뒤집어 내건 채 1전시실을 여는 방안 등을 문화회관 측에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거부 시 전시 자체를 보이콧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다.
전시 참여작가 중 한 명인 김미련 로컬포스트 대표는 “(중구의 조치는) 예술 작품에 대한 부당한 검열이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면서 “내부 의견을 모은 후 전시장 밖에서 이 문제를 널리 알리는 방안 등 여러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