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토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길들일 것인가, 길들 것인가. 인공지능(AI)을 대하는 인류의 시선은 ‘디스토피아이거나, 유토피아이거나’의 상반된 길에서 서성인다. 때로 ‘중간은 없다’는 두려움과 함께 낯선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토의를 주재하면서 국제사회가 힘 모아 AI의 ‘책임 있는 이용 원칙’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현재의 AI는 새끼 호랑이와 같다’는 AI 대부 제프리 힌턴 교수 말을 인용한 뒤 “새끼 호랑이는 사나운 맹수가 될 수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랑스러운 더피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아직 가능성의 원석 상태인 지금이 인류가 함께 움직여야 할 때라는 의미다.
‘두머’(파멸론자)든, ‘부머’(번영론자)든 AI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될 거라는 데 이견은 없다. 유토피아론의 근거는 인간의 보조적 존재로서 가축처럼 ‘길들인 AI’일 터인데, 인간이 AI를 길들인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이 오만은 인간을 AI 디스토피아로 안내할 수도 있다. “컴퓨터는 죄 속에 잉태되었다. 컴퓨터로 인해 강대국의 파괴력은 엄청난 수준으로 높아졌다”는 짐 홀트의 탄식도 ‘기술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긴 인간의 오만을 돌아본 말이다.
AI의 선지자 앨런 튜링은 AI를 “흉내 내는 기계”라고 했다. “챗GPT는 인류의 생각과 문장을 반사하는 존재적 메아리이자 거울”이라는 뇌과학자 김대식의 말대로, AI는 인간의 거울상과 같다. 인간이 사랑·평화·포용·공존을 시전한다면 AI도 같은 길을 밟을 것이고, 인간이 증오·전쟁·폭력·경쟁만 보여준다면 AI 세상도 그리 구성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스스로 인간다움과 더피의 길로 간다면 AI는 더피가 될 것이다. 결국 바로 길들어야 하는 건 AI가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이 대통령의 ‘불평등·불균형의 실리콘 장막’을 넘는 ‘모두를 위한 AI, 인간 중심의 포용적 AI’ 호소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특히 AI의 모방 대상인 ‘인간’이 집단으로서 인간이란 점은 중요하다. 인류는 지금까지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낼 때 전쟁과 학살 등 비이성적이고 악한 선택을 해왔다. AI의 국제적 연대가 시급한 이유다. 인간이 자신밖에 모른다면 AI도 인간을 경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