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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2002년 영국의 한 민간 재난 관리 업체에 근무하고 있던 저자에게 한 가지 임무가 맡겨진다.

"재난 현장과 그 밖의 세상은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린다"는 책의 말처럼 이태원도, 무안공항도 사고 직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이 일상을 영위하던 공간일 뿐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처럼 전 세계인의 일상 자체가 재난 현장이 되는 경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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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복구, 죽은 자와 산 자 모두를 위한 최선이란

입력 2025.09.25 20:13

수정 2025.09.2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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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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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가라앉은 뒤

루시 이스트호프 지음 | 박다솜 옮김 창비 | 364쪽 | 2만2000원

루시 이스트호프는 재난 복구란 곧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이며, 애도의 한 방식이자 희망을 준비하는 시간임을 자신의 경험과 생생한 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 Caitlin Chescoe

루시 이스트호프는 재난 복구란 곧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이며, 애도의 한 방식이자 희망을 준비하는 시간임을 자신의 경험과 생생한 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 Caitlin Chescoe

2002년 영국의 한 민간 재난 관리 업체에 근무하고 있던 저자에게 한 가지 임무가 맡겨진다. 이라크 파병 군인들의 사망을 대비하기 위한 안치소를 짓는 일이다. 시신 운반용 가방 500개, 관 700개, 관 안감 750개, 국기 750개, 화학적으로 오염된 시신 운반용 가방 250개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비밀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2003년의 일이고, 당시 영국 정부는 이 전쟁과 자국 군대의 파견을 미리 예상해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 “안치소를 미리 짓는다는 건 재난 대응 차원에서는 훌륭한 계획이었지만, 반전 시위가 한창이었던 당시에 알려졌다간 호된 비판”을 받을 일이었다. 저자는 해당 업무에 대해 가족에게조차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준비에 들어간다.

영국의 재난 복구 전문가인 저자가 9·11테러, 코로나19 팬데믹 등 자신이 경험한 재난 현장의 기록을 개인적인 이야기와 엮어 풀어낸 에세이다. 전쟁처럼 시작과 끝을 인간이 결정하는 어떤 의미에서 준비가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재난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9·11 테러, 팬데믹 등 경험한 재난 복구 전문가의 현장 기록
유족을 상대하는 일의 어려움…최선은 ‘당사자 입장’ 되는 것

[책과 삶]재난 복구, 죽은 자와 산 자 모두를 위한 최선이란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 또한 예상치 못한 재난의 하나였다. 당시 저자는 유류품 및 유해를 보관하는 시설에 파견할 영국 안치소 및 장례 인력을 모집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전대미문의 사건은 이를 복구하는 현장에도 혼란을 안겼다. 현장에 투입된 대응요원들이 사고 지역에서 발생하는 의문의 먼지에 의해 고통받는다. 당시 ‘그라운드제로 기침’이라 불렸던 먼지에 의한 호흡기 질환은 이후 ‘9월11일 호흡기 질환’이라 명명되며 이 먼지에 아스베스토(석면), 수은, 크롬, 아연 등을 비롯한 다수의 발암 물질이 포함돼 있었음이 밝혀진다.

현장 정리보다 어려운 것은 유족을 상대하는 일이다. 잔혹한 폭격의 현장에서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기란 어려웠다. 그런데도 현장 검시관이 유가족에게 시신 확인을 약속하는 모습을 보고 저자는 “한계를 두지 않고 과학적 발전에 따라 신원 확인을 계속하겠다는 약속에 스스로를 옭아맨다는 건, 재난 초기 유가족의 상처를 무기한 열어두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참사 현장에서 유가족의 고통을 배가하는 무책임한 말들이 주는 상실감을 우리도 알고 있다. 2014년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사고 때다. 사건 초기 전달됐던 ‘전원 구조’ 정보는 금세 오보로 밝혀졌고, ‘에어포켓’ 등 생존 가능성을 시사하는 정보들이 구체적인 확인 없이 범람하며 유가족의 아픔을 키웠다.

“9·11테러로 뉴욕에서 사망자 명단에 오른 사람의 40%는 여전히 그들의 죽음을 물리적으로 입증해 줄 유해가 나오지 않았다”는 저자의 말처럼 재난 현장에서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역할을 하며 죽은 이에 대해 최선을 다한다.

물론 그 최선은 언제나 당사자의 입장에서야 한다.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의 유가족을 만났던 일화는 그 사실을 다시 일깨운다. 사망한 군인의 부인은 남편의 얼굴을 곱게 화장해 전쟁의 참상을 지운 모습을 보고 말한다. “그이는 군인이었다고요. 젠장. 망할 놈의 성가대원처럼 꾸며놨잖아요.”

도심 테러를 비롯해 각종 사회적 재난이 잦아지며 사람들은 일상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참사를 겪는다. 2022년 서울 용산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 2024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의 활주로 이탈 사고 등도 그렇다. “재난 현장과 그 밖의 세상은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린다”는 책의 말처럼 이태원도, 무안공항도 사고 직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이 일상을 영위하던 공간일 뿐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처럼 전 세계인의 일상 자체가 재난 현장이 되는 경험도 있었다. ‘봉쇄’로 대표되는 코로나 대응 전략은 효과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의 재난은 또 다른 재난을” 불러온다. 취약계층과 아동을 위한 기관이 무차별적으로 폐쇄되며 저자는 “봉쇄 기간 소아 두부 외상이 증가”했다는 결과를 마주한다.

세계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코로나 이후 더 심각한 세계적 전염병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과밀화된 도시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이전보다 더 거대한 규모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재난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국내에서도 필요한 논의라는 점에서 책의 한국판이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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