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나타난 곰
가야 비스니엡스키 글·그림 | 이경혜 옮김 문학과지성사 | 40쪽 | 2만원
뉴욕의 ‘차가운 도시 남자’ 알렉상드르. 그는 225번가 340번지 3층에서 매일 아침 일어나 욕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주름이 새로 생겼는지 살폈다. 그런 다음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시계추처럼 오직 세 단어 ‘지하철, 일, 잠’만을 오가며.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퇴근길에 알렉상드르는 집보다도 큰 곰과 마주쳤다. 곰은 자기를 모르겠냐고 물었다. “나야 나, 곰돌이! 나를 맨날 그렸으면서 몰라?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넌 화가가 되고 싶어 했잖아?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알렉상드르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 아무 일도 안 일어나.”
다음날부터 곰돌이는 ‘알렉상드르 꿈 되찾기’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괜찮은 척’ 살아가는 그에게 “언제까지 그런 척만 하면서 살 건데?”라며 소리치기도 했다. ‘성공한 모습’의 알렉상드르는 지금의 삶도 나쁘지 않다고 자위하며 곰의 호소를 애써 외면했다. 혼자로는 설득이 안 되자 곰은 알렉상드르의 애착인형 여우 폭실이도 소환했다. 폭실이는 알렉상드르에게 “소용돌이의 바닥을 쳤을 때 옆으로 튀면 흐름을 깰 수 있다”며 “물 위로 다시 올라가려면 그때를 잘 잡아채야만 한다”는 말만 남기고 가버렸다.
여우의 ‘소용돌이론’을 듣고 밤새 고민한 알렉상드르는 “길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잘나가는 직장을 그만둔 날, 알렉상드르는 곰돌이·폭실이와 함께 놀이공원에서 하루 종일 놀았다. 그에게 그동안 잃어버렸던 감정들이 찾아왔다. 곰이 말했다. “삶이란 롤러코스터와 유령의 집 사이 어딘가쯤 있는 게 아닐까.”
알렉상드르가 화가의 꿈을 이루었다는 결말은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몽상가의 일탈’이라고 현실주의자들은 매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뭣이 중하랴. 삶의 아주 사소한 것들 속에서 꿈꾸던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아무 일도 없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수많은 알렉상드르에게 전하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