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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으면 놓여난다

입력 2025.09.25 20:37

수정 2025.09.25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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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이 종종 종교나 인문학 관련 글과 영상을 보내온다. 그중에는 정치와 종교의 일탈과 병리를 다룬 것도 있다. 정치의 극단적 대립은 이제 익숙해 놀랍지 않지만, 처참하게 일그러진 종교의 타락상을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괴롭다. 사이비와 이단이 선한 사람들을 현혹해 삶을 파괴하는 데에는 기성 교단 종교인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최근 사이비 종교의 실상을 다룬 영상과 책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JMS 정명석, 오대양,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는 충격이었다. 이 교주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메시아라 내세우며 믿음과 구원을 약속한다. 과도한 헌금을 강요하며, 신도의 노동력을 착취해 재산을 불린다. 또한 여성 신도를 세뇌해 성적 도구로 삼고, 신도와 자녀들을 외부와 철저히 차단한다. 나아가 정의롭지 못한 정치 세력과 결탁해 이권을 추구하고, 교단을 떠나 실상을 고발하는 용기 있는 이들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안타깝게도 많은 청년이 이들의 정신적 족쇄에 묶여 있다. 이는 정치와 종교가 본연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신도들은 도덕적 타락과 인권 유린을 목격하고도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가? 왜 상식적이고 주체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가? 학자들은 그 원인을 인간의 성향과 심리에서 찾는다. 매슬로의 욕구 위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생존·안전·소속·존중의 욕구를 지닌다. 사이비나 극단적 정치 집단에 빠지는 이유는 특히 ‘외로움과 불안’을 달래려는 심리와 맞닿아 있다. 모든 인간에게 외로움과 불안만큼 두려운 것도 없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잘못된 길로 흐를 때, 인간은 쉽게 극단에 매몰된다.

중국 송나라 시대 야부 스님의 선시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水丈夫兒)”가 떠오른다. 벼랑 끝에서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일이 대단한 것이 아니니, 손을 과감히 놓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는 뜻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소속을 잃은 외로움과 고립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또한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대세에 편승하려는 성향, 배신자라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도 결단을 가로막는다.

솔로몬 아시의 사회심리학 실험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피험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선의 길이를 비교하는 단순한 상황을 설정했다. 실험에서 아시가 사전에 지정한 다수의 공모자가 의도적으로 틀린 답을 말하면, 피험자도 정답을 보면서도 집단의 시선에 눌려 틀린 답에 동조했다. 집단의 압력이 개인의 판단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옳다고 말하지 못하고, 틀렸다고 알면서도 틀렸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나약함이 용기 있는 결단을 가로막는다.

미국 소설가 커트 보니것은 ‘그랜펄룬(granfalloon)’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크다(grand), 허위(fallacy), 풍선(balloon)의 합성어다. 실질적 의미 없는 집단 속에서 허위의 소속감에 집착해 자부심을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풍자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극단과 편향의 집단에서 용감하게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하고 체념하거나 속앓이를 하는 이들이 많다. 먼저 자신이 자유롭고 평안한지 성찰해야 한다. 내면 깊숙이 결핍감·열등감·소외감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이 속한 집단이 도덕과 상식을 지키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또한 집단과의 동일시, 대세 추종, 배신자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결단을 주저하고 있지 않은지도 살펴야 한다.

석가모니는 지혜로운 삶을 막는 가장 큰 원인으로 사견·편견·욕심·집착을 지적했다. 그리고 머뭇거림을 경계했다. ‘지혜의 검’이라는 말은 실상을 직시하고 과감히 결단하는 행위가 곧 지혜임을 뜻한다. 지혜의 칼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결코 배신도, 후퇴도 아니다. 그것은 더 깊은 차원의 전환이다. 천길 벼랑 끝에서 헛된 믿음의 나뭇가지를 놓아야 한다. 붙잡으면 붙잡히고, 놓으면 비로소 놓여난다.

법인 스님 화순 불암사 주지

법인 스님 화순 불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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