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들어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근 주가 상승은 펀더멘털 개선에 대한 기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2025~2026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1%대에 고착화되고 있고, 상장사들의 이익 전망치도 뚜렷한 개선의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근 주가 상승은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기대와 달러 약세에 따른 비달러 자산으로서의 한국증시에 대한 선호 개선에 기인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과 달러 약세 모두 한국의 펀더멘털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소액 주주 친화적이지 못한 ‘나쁜 지배구조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다’라는 주장은 타당하지만, 지배구조 개선이 기업 수익성 개선으로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합당한 지배구조는 다수의 투자자에게 자금을 지원받아 사업을 영위하는 상장사들이 응당 가져야 할 태도에 가깝다. 지배구조가 좋다고 해서 기업 수익성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소액주주들을 착취하는 나쁜 지배구조가 장기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늘린다는 인과관계도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
약달러 역시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지 않다. 지난 4월 초 1500원대에 육박했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에는 1350~1400원의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 하락은 ‘달러 약세’로 부를 수도 있고, ‘원화 강세’로 부를 수도 있을 텐데, 4~8월에 나타났던 원·달러 환율 하락은 달러 약세로 불러야 할 듯하다. 수출 호조 등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 개선이 환율 하락을 이끈 것이 아니라 미국의 재정수지와 무역수지 적자라는 소위 ‘쌍둥이 적자’ 때문에 원·달러 환율 하락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유야 무엇이든 달러 약세는 미국 밖의 금융환경을 ‘완화적’으로 만든다.
내수 침체 ‘결정적 처방’ 없는 상황
달러가 기조적인 약세를 나타내는 국면에서는 한국 주식을 비롯한 비달러 자산의 성과가 미국 자산보다 더 나은 경향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달러는 세 차례에 걸쳐 장기 약세를 나타냈는데 1970년대(1972년 1월~1978년 5월)에 코스피의 연평균 등락률은 28.3%로, 미국 S&P500지수의 -1.1%를 압도했다. 1980년대 후반의 달러 약세 국면(1985년 6월~1989년 3월)에도 연평균 값 기준 코스피 +69.0%, S&P500지수 +12.2%였고, 1990년대 후반 이후(1998년 7월~2010년 8월)에도 코스피 연평균 등락률은 +15.6%, S&P500지수는 -0.6%였다. 올해 시장 흐름도 마찬가지다. 9월24일까지 코스피 연간 등락률은 +44.7%로, S&P500지수의 +15.3%를 압도하고 있다. 지난 4월 이후 이어지고 있는 한국 증시에 대한 외국인들의 순매수는 환율 변화에 대한 기계적 선호의 변화, 즉 달러로 표시되는 미국 자산보다는 비달러 자산에 대한 선호가 커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냉랭한 경기와 뜨거운 주식시장이라는 어색한 동거는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독일 증시는 GDP가 2023~2024년 2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하는 와중에도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고, 최근 재정 건전성 우려가 불거지고 있는 영국에서도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 레벨에서 거의 내려오지 않고 있다. 꼭 위험자산인 주식 가격만 상승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안전자산을 상징하는 금도 최근 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글로벌 경제에 풀려있는 유동성의 양이 많다 보니, 자산의 속성과 무관한 동반 상승세가 나타나고 있다.
요즘 세상에서는 ‘주가는 경제의 그림자’라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한국 증시의 상승세를 ‘한국 경제의 밝은 미래를 선행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자산시장과 실물경제는 리그가 완전히 분리된 별세계가 된 것 같다. 자산가격이 펀더멘털과 전혀 무관할 수는 없겠지만, 그 연결고리는 과거보다 훨씬 느슨해졌다.
다만 최근의 주가 상승이 실물경제에 무익한 것은 아니다. 경제가 좋아서 주가가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주가가 오름으로써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주가 상승 수혜자 늘수록 ‘긍정효과’
한국 경제에서 내수는 순환적인 둔화가 아니라 구조적인 위축세가 이어지고 있다. 민간소비는 사상 최장기간의 (전년 동월 대비) 감소세가 나타나고 있다. 주택에 깔린 가계 부채 때문이다. 집값이 오른다고 해서 이를 유동화시켜 소비를 늘릴 방법이 없고, 오히려 부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 탓에 소비 여력이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 투자는 국토 개발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여력이 거의 없다. 경제성 있는 개발 사업이 존재했다면 ‘가덕도신공항’ 건설과 같은 논란의 국책 사업이 시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업의 설비투자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기업들은 왕성하게 투자하고 있지만, 트럼프 정부와 합의한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고려하면 이 땅에서는 제조업 공동화가 우려될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 상승으로부터 수혜를 누릴 수 있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수가 많아졌다. 2019년 말 618만명이었던 한국 주식 투자자 수는 2024년 말 1423만명까지 늘어났다. 주가가 오르고, 상장사들의 배당이 늘어났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과거보다 커졌다. 물론 ‘배당소득 분리 과세’ 논란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배당이 늘어나게 될 경우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소수 지배주주들이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를 굳이 문제 삼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주식시장은 ‘1인 1표’라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논리가 아닌 ‘1주 1표’ 주주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장이다. 주식 보유수만큼 수혜를 누리는 걸 경원시할 일이 아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배구조 개선 논의도 일부 지배주주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율 이상으로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한국의 내수 침체를 되돌릴 수 있는 ‘결정적 처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시장에 의한 해결에 의존할 수 없기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소비쿠폰을 나눠줄 정도가 아닌가. 연속성을 가지기 힘든 진통제에 가까운 처방이었다. 아무리 지배주주의 몫이 크다고 하더라도 주주 1423만명에게 돌아갈 배당이 늘어난다면, 장기적으론 소비쿠폰 지급보다 훨씬 큰 긍정적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까 싶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