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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박한 교제폭력 현장서 체크리스트 수십개 작성···늦어지는 입법에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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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 입법이 늦어지면서 실제 피해자들이 범죄를 신고하는 현장에서는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한 여성·청소년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관은 "근본적으로 교제폭력을 다룰 법이 마련되면 조사표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며 "관계를 따지는 등의 절차를 줄일 수 있고 더 신속하고 폭넓게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교제폭력 관련 입법이 이뤄지고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면 현장의 혼란이 많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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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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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박한 교제폭력 현장서 체크리스트 수십개 작성···늦어지는 입법에 ‘혼란’

입력 2025.09.28 06:00

수정 2025.09.28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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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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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간소화했지만 여전히 현장서 쓰기엔 복잡

조사 담당자 판단·경험 따라 대응 적절성 갈리기도

법안 논의 지지부진···“법으로 명확한 기준 나와야”

교제폭력 이미지. 경향신문 자료사진

교제폭력 이미지. 경향신문 자료사진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 입법이 늦어지면서 실제 피해자들이 범죄를 신고하는 현장에서는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 보호 조치를 위해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체크리스트 항목이 너무 많다거나, 현장 경찰관의 경험과 역량에 따라 조사 난이도가 달라진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교제 관계를 명확히 정의한 규정이 없어서다.

26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등 사건 신고가 접수되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피해자 등에게서 범죄수사규칙에 따라 ‘긴급임시·긴급응급조치 통합 판단 조사표’(판단 조사표)를 조사해 작성해야 한다. 위험성을 평가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은 우선 가정폭력인지 스토킹인지, 사실혼인지 쌍방 폭행인지 등을 확인한다. 이어서 ‘가해자가 평소에 거친 언행, 잦은 싸움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임’ ‘가해자가 피해자의 일상생활을 통제함’ 등 조사표의 10가지 항목을 파악해야 한다. 10개 중 3개 항목(3점)에서 ‘예’라는 답이 나오면 경찰관은 법원의 결정 없이도 접근금지 등 피해자를 보호하는 긴급임시(가정폭력)·긴급응급조치(스토킹)를 시행하도록 적극 권장된다.

여기에 아동학대 정황까지 있으면 아동학대 현장조사 체크리스트도 작성해야 한다. 혼인 관계가 아니라면 사실혼 체크리스트도 추가된다. 신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고 지난 신고 내역이나 사건 내용을 파악하는 것에 더해 면담 조사를 통해 많게는 수십개 항목을 확인해야 하는 셈이다.

현재 활용하고 있는 이 조사표는 지난해 연구 용역을 통해 타당성 검사까지 마쳐 간소화한 것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가정폭력과 스토킹 사건은 서로 다른 조사표를 작성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급박한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복잡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교제폭력 토론회’에서 한 경찰관은 “현장에서 확인해야 하는 항목이 너무 많다. 급박한 상황에서 경찰관은 물론 피해자 등 당사자들도 너무 많은 질문과 답을 해야 해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 협조 정도에 따라 조사 난이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서울의 한 지구대 소속 경찰관은 “체크리스트 확인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면서도 “조사에 꼭 필요한 내용이지만 피해자 중에는 질문에 답을 안 하고 조사를 거부할 때도 많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조사를 담당한 경찰관의 판단과 경험에 따라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 이후에 강력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6월 인천 부평에서 남편에게 살해된 여성은 신고 당시 조사표상 2개 항목에만 ‘예’라고 답해 보호조치를 받지 못했다. 조사 항목을 간소화해서 오히려 폭넓게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사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따져 어떤 법률을 적용할지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가정폭력과 스토킹이 적용 법률이 달라서다. 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 교제폭력의 경우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하기가 어렵다. 교제관계를 명확히 정의하고 피해자 보호조치를 규정할 별도의 입법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회에는 지난 4일 기준 9건의 교제폭력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한 여성·청소년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관은 “근본적으로 교제폭력을 다룰 법이 마련되면 조사표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며 “관계를 따지는 등의 절차를 줄일 수 있고 더 신속하고 폭넓게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교제폭력 관련 입법이 이뤄지고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면 현장의 혼란이 많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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