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서울 김포공항에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한 대체 신분증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백민정 기자
김모씨(18)는 지난 26일 우체국을 통해 해외 대학에 입학 서류를 보냈다. 하지만 서류가 제때 도착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 며칠째 마음을 졸이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날 저녁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우체국 인터넷 우편 배송 서비스가 먹통이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 27일 오전 배송 정보를 확인하려 했지만 조회가 되지 않았다. 입학 서류는 다음달 1일 정오까지 도착해야 한다. 그런데 발송이 정상적으로 됐는지조차 아직 확인할 길이 없다. 김씨는 “기간 내에 꼭 도착해야 하는 서류인데 늦어지면 대학에서 사정을 인정해줄지 걱정된다”며 “해외에 나가 시험을 보고 합격까지 했는데 이런 일로 떨어지게 되면 너무 허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오후 8시20분쯤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정부 전산망이 며칠째 마비됐다. 28일까지는 행정 수요가 그리 많지 않은 주말이라 당장 ‘대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29일 평일이 시작되면 시민들의 불편은 급증할 수 밖에 없다.
A씨는 29일 오전에 ‘주민센터 오픈런’을 계획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앞두고 주말에 무인민원발급기를 이용하려 했는데 방법이 없어졌다. A씨는 “동사무소(주민센터)에 직접 가서 서류를 떼고 출국하려 한다”며 “오전 11시10분 비행기인데, ‘오픈런’을 해도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는 ‘행정안전부 화재로 인한 대체 신분증 안내’ 표지판이 설치됐다. “모바일 신분증, 정부 24를 통한 신분 확인이 어려울 수 있으니 공항 이용 시에는 실물 신분증 등을 지참하라”는 안내였다. 평소 출장 등으로 국내선 항공을 자주 이용하는 장모씨(29)는 “짐이 많을 때 신분증과 비행기 표를 따로 챙기기 번거로워 모바일을 많이 애용했는데, 이번 일로 비상시에 대비해 실물 신분증을 들고 다녀야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28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우체국 ATM기에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한 서비스 중단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있다. 이준헌 기자
우체국 배송과 금융 서비스도 멈췄다. 부산에 사는 이예원씨(27)는 “가족 모두 주거래 은행이 우체국인데, 주말 내내 체크카드 대신 신용카드만 써야 했다”며 “자영업을 하는 부모님은 물류 구입이 막혀 난감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조모씨(28)는 “온라인 중고거래를 하는데 우체국 택배 예약이 안 돼 평일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엑스(X·옛 트위터)에는 “우체국 전산이 마비돼 직원들이 주소와 이름을 하나하나 수기로 적는다”는 글도 올라왔다.
학교 현장에도 혼란이 이어졌다. 교사 가정용 무선 업무포털 연결망(evpn) 접속이 막히면서 출결·복무 처리와 성적 입력에 차질을 빚었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교사 이봄씨(가명·27)는 “학생 출결 업무는 담임교사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학교에서는 처리할 시간이 없어 보통 주말에 집에서 하는데, 작동이 잘 안 된다”며 “며칠 뒤 수행평가와 논술형 점수 입력이 예정돼 있어 잘 마무리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온라인 부동산 거래 신고도 중단돼 계약 신고가 불가능해졌고, 소방본부의 119 신고 체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화 신고는 가능하지만 문자·영상·웹 등 다매체 신고는 막혔다. 신고자의 위치를 자동 확인하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국가 전산망이 한 곳에 집중돼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황당해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인근 정부출연연구소에서 근무하는 김영희씨(57)는 “연구소는 서버를 세 곳에 분산해 언제든 10분 안에 복구할 수 있다”며 “중앙정부 서버가 화재 때문에 며칠씩 복구가 안 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이예원씨 역시 “국가 전산 시스템이 한 곳에 몰려 있는 게 맞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