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7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IAEA가 1992년 영변 핵시설을 사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북한이 제출한 보고서와 IAEA의 사찰 결과가 달랐던 것이다. IAEA가 미신고 시설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북한은 ‘주권 침해’라고 반발하며 1993년 NPT 탈퇴를 선언했다. 1차 북핵 위기가 발발했다. 역으로 북핵 대화의 문도 열렸다.
1994년 10월 북·미 기본합의서, 즉 제네바 합의는 북핵 협상의 첫 결과물이었다. 합의서는 ‘북한은 흑연감속 원자로 및 관련 시설의 동결을 이행하고, 동결 상태를 IAEA가 감시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규정했다. ‘동결’(freeze)에 핵물질 생산이 멈췄는지를 확인·검증하는 과정을 포함한 것이다. 제네바 합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등장으로 파기됐다. 2006년 북한 핵 실험 후 북핵 협상은 동결보다 강한 ‘폐쇄’ ‘불능화’ 같은 용어들이 사용됐지만 합의, 교착, 위기, 협상을 반복하다 실패했다. 2019년 북·미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2022년 9월 핵보유국을 일방 선언하며 비핵화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 핵·미사일 중단→축소→폐기’라는 3단계 비핵화 구상을 밝혔다. 지난달 처음 제시한 3단계 구상에서 ‘동결’이 ‘중단’(stop)으로 바뀐 것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동결보다 중단이 더 맞는 표현”이라고 했다. 국제사회가 이해하는 동결의 의미에는 검증이 들어 있으니, ‘북한이 검증 없이 핵·미사일 중단을 선언하면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냐’는 질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위 실장은 이에 “중단에도 검증이 포함된다”고 했으나 명쾌하진 않다. 3단계 구상이 아직 체계적으로 완성된 논리가 아닐 수도 있지만, 대통령실은 동결과 중단의 차이가 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한·미는 그동안 북한의 비핵화 진행에 맞춰 제재를 완화하고 관계를 진전시키는 접근을 해왔다. 하지만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가 있을 뿐,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도 않았는데, 우리 내부에서 용어를 둘러싸고 공방하는 것은 어쩌면 소모적이다. 중요한 것은 비핵화에 도달하기 위한 능동적·창의적 과정일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