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30일 배임죄 폐지를 공식화했다. 당정은 “과도한 경제형벌이 정상적인 경영 판단까지 범죄로 몰아 기업 운영에 부담을 줬다”며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배임죄는 경계가 모호한 규정 때문에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의견에, 재벌 총수·경영진 전횡을 막는 안전망이라는 반론이 맞섰던 뜨거운 쟁점이다. 배임죄 폐지 시 합리적이고 정교한 보완책이 전제돼야 한다는 우려를 당정은 귀담아듣기 바란다.
배임죄는 구성 요건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 합리적·구체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또 예방보다 응징을 중시해 기업 경영을 옥죄는 요인으로 지목된 것도 사실이다. 배임죄 무죄율이 다른 범죄의 두 배를 웃도는 건 적용 범위가 넓고 처벌 강도가 센 배임죄 특징을 보여준다. 경영계에선 배임죄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범죄’라고 불러왔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까지 확대한 여당의 상법 개정 후 재계의 폐지 요구는 더욱 커졌다. 합리적인 경영 판단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비상경제점검TF, 지난 15일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한국에서 투자 결정을 잘못하면 배임죄로 감옥 갈 수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러면 어떻게 사업을 하느냐”며 배임죄 재검토를 지시했다. 기업의 정상적 경영행위는 처벌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하지만 배임죄가 재벌 총수·경영진의 권한 남용을 견제해온 수단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당정은 ‘경영 위축 방지’를 폐지 근거로 내세웠지만 지금까지 배임죄가 적용된 대부분 사례는 재벌 총수일가의 편법 승계, 일감 몰아주기 같은 부당 내부거래 문제였다. 그럼에도 입증·법리 공방을 벌이다 곧잘 재벌 총수들은 법망을 빠져나갔던 것도 현실이다. 배임죄 폐지가 투명한 기업구조를 만들기 위해 추진한 상법 개정 취지와 일관성을 무력화한다는 우려도 일리 있는 지적이다.
당정은 “중요 범죄에 대한 처벌 공백이 없도록 민사 책임을 강화하겠다”며 대체 입법을 약속했지만 정작 이날 발표엔 빠졌다. 형법상 배임제를 폐지하되 징벌배상제 등 민사상 손해배상 강도를 높이는 쪽으로 입법 방향을 잡겠다고 한 것이다. 정교한 보완책이 전제되지 않은 배임죄 폐지는 재벌·경영진에겐 면죄부가 되고 주주 권리와 시장 질서를 훼손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투명한 지배구조, 공정한 시장질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함께 만드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TF 당정협의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