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30일 부산 누리마루 APEC 하우스 기념관에서 문화 관광 해설사로부터 김규장 나전칠기 명장의 ‘십이장생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30일 부산을 찾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연한 전통 의장대 도열을 시작으로 국빈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다. 한 달여 만에 다시 마주 앉은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76분간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해운대 동백섬을 산책하고, 만찬을 함께 했다.
이시바 총리는 오후 3시쯤 금정구 영락공원에 있는 이수현씨 묘소 참배로 방한 일정을 시작했다. 이씨는 일본 유학 중이던 2001년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의인으로, 현직 일본 총리가 이씨 묘를 참배한 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오후 4시30분쯤 해운대구 APEC 누리마루 하우스 3층 회의장 앞에서 이시바 총리를 맞았다. 이 대통령은 “서울에서 내려오는 것보다 총리께서 여기 오시는 게 더 빨랐을 것”이라며 말했다. 양국 정상은 십이장생도 그림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 후 해설사의 그림 설명을 들었다.
이시바 총리가 누리마루로 입장할 때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연한 취타대 전통 군악대 선도와 전통 의장대가 도열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실무 방문이지만 사실상 국빈에 준하는 예우인 셈”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금색 포인트의 넥타이를 맸다. 강 대변인은 “금색은 귀중함을 상징하는 색깔로 상대국인 일본 및 이시바 총리와의 관계를 귀하게 여긴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양국 정상은 2층 회담장에 입장해 일자형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월 일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특히 정말 음식을 잘 준비해주셨는데 그 중 이시바 카레가 최고였다”고 말해 양국 관계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시바 총리는 “여기(부산)는 맑은 날에는 쓰시마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이라며 “아마도 제 고향에선 1시간밖에 안 걸릴 것 같다. 이렇게 아주 가까운 지역에서,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서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안해 주셔서 이렇게 실천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부산 해운대구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양국 정상은 회담 후 해운대 동백섬을 산책한 뒤 만찬을 함께 했다. 만찬장 뒤편에는 양국 정상의 만남을 기념한 조선통신사 유물들이 디지털 화면으로 전시됐고,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전시 내용을 해설했다.
만찬 메뉴는 이시바 총리의 고향인 돗토리현에서 즐겨 먹는 대게와 가평의 잣을 활용한 가평 햇잣 소스와 대게 냉채를 비롯해 양국 화합을 상징하는 음식들로 마련됐다. 한국 전통의 보양식 재료인 민어와 오골계를 넣은 적, 돗토리현의 전통 음식인 두부 치쿠와를 재해석한 부산 어묵튀김, 가을 봉화 자연송이와 전복찜도 마련됐다. 이 대통령의 고향인 안동 지역에서 나는 햅쌀로 지은 밥과 안동 한우 갈비찜도 제공됐다. 후식으로는 한국의 옥광밤 디저트와 일본의 전통 모찌, 메밀차가 준비됐다.
이날 건배주로는 막걸리, 만찬주로는 일본의 전통주와 한·일 국제 부부가 만든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와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지인 경주의 법주가 마련됐다. 양국 정상은 한·일 혼성음악 공연 등 친교 일정도 소화했다.
만찬과 친교 일정에는 이시바 총리의 배우자인 이시바 요시코 여사도 함께했다. 김혜경 여사는 회담 이후 열리는 만찬과 친교 일정을 함께 소화할 예정이었으나 이석증을 진단받아 일정에 동행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