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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티에게

입력 2025.09.30 21:54

성호씨, 얼마 전 나눈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못다 한 말을 글로 전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서먹해하고 긴장을 한 듯했지만 맥주 한 잔 마신 다음부터는 술술 말문을 풀더군요.

“열심히 일해서 몇년 전 운좋게 서울에 아파트를 사는 데 성공했습니다. 순조롭게 승진을 했고, 연봉도 만족스럽습니다.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콘서트에 가고, 패션이나 음식 기호도 확고해서 섬세한 취향이라는 평을 들어요. 교육비가 많이 들기 시작했지만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것도 거르지 않습니다. 하프 마라톤을 뛸 정도로 운동도 제대로 합니다.”

이렇게 젊은 감각을 유지하며 사는 40대 초반이라고 자신하는데, 20대 후배들이 성호씨를 대하는 눈길과 태도가 거리감이 있어 서운하다는 얘기였지요. 또 하나, 같은 팀 20대 여자 후배가 잘 웃고 싹싹하게 대해서 살짝 내게 호감이 있나 생각한 적 있다고도 했지요. 지금은 결혼반지를 챙겨 끼고 다닌다면서.

성호씨가 바로 ‘영포티’라 불리는 세대입니다. 젊게 사는 중년을 지칭하는 용어였는데, 최근 2030세대에게는 겉으론 젊고 트렌디하려고 하지만 자기과시적이고 허세만 있는 중년, 나이 듦을 인정하지 않는 세대로 냉소적으로 소비되더군요.

왜 이리 영포티를 미워하는 걸까요? 약간의 부러움이 섞여 있어요. 영포티는 부동산 폭등기가 오기 전에 운좋게 아파트 구매에 성공한 사람이 많아요. 서울 ‘마용성’ 지역의 신규 매수자에 영포티가 많더라고요. 반면 2030세대는 집값이 뛰어버린 탓에 꿈도 꾸지 못하게 됐어요. 소득이 한창 최고조에 오르고, 와인·음악 같은 취향을 즐기면서 주거도 안정된 영포티를 보면 부러움이 없다고 할 수 없겠죠?

나도 저렇게 살고 싶은데 몇년 차이로 저 멀리 서 있는 걸 보니 얄밉지 않을까요. 갈등과 긴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 억울해하기보다, 미안함과 인정의 태도가 필요할 듯합니다. 가까운 사이라 내 현재를 말했을 뿐이라 해도 자랑이나 잘난 척으로만 들리기 쉽습니다. 같은 편이라 여기고 불평을 하는 것도 배부른 소리로 비칠 뿐입니다.

그들과 어떡하면 친해질 수 있냐 물었죠. 이젠 포기해야 해요. 중년으로 이어지는 전환기가 왔으니, 이젠 제 쪽으로 넘어오세요. 중년은 ‘인생의 정오’라 하는데, 성취한 것이 많다면 오후를 맞는 마음이 가뿐할 겁니다.

‘친하게 가까이’ 말고 거리를 유지하세요. 2030은 사회적 미소로 웃으며 응대하는 것이지 개인적 호감이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나를 좋아해주기를 바라지 마세요. 내 직급이 높으니 고개를 끄덕이고 눈꼬리를 올려줄 뿐이에요. 잘못 해석해서 착각 서사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친근하고 격의 없이 대하지만 권위가 살지 않아 휘둘리는 선배가 되기보다 적당히 무섭기도 하고, 분명한 선을 지키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확실히 구분해주는 사람이 됩시다. 권위적인 것과 권위가 있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무섭지만 배울 게 많은 사람”이란 인상이 되는 쪽을 선택합시다.

후배 앞에서 살짝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세요.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큼 꼴불견이 없습니다. 저기압일 때 짜증낸 건 쉽게 잊지만, 후배들은 그걸 더 오래 기억해요.

저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민망했고, 거리감의 시선을 느꼈답니다. 젊게 보이려 애를 썼지만 나를 보는 시선은 이미 저 멀리 가 있다는 걸 한참 뒤, 50대 후반에야 인정했어요. 영피프티는 불가능. 피프티는 피프티예요. 그래서 영포티 성호씨에게 이 글을 드리는 겁니다.

중년이 되면 좋은 것도 많아요. 뒷자리로 물러나고, 후배에게 공을 돌리며, 기세보다 요령으로 일하게 되니까요. 무엇보다 모임에서 “이제 그만 일어납시다”라고 말할 권한이 생겼답니다. 얼마나 좋다고요. 나이 듦이 좋은 점도 많다는 걸 실감하는 스틸 피프티 드림.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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