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스>. (주)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한때 용두시 일대를 주름 잡았던 조직 ‘식구파’. 조직이 운영하는 낙원호텔에도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돈도 힘도 있던 호시절은 모두 과거가 됐다.
식구파를 이끌던 임대수(이성민)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차기 보스를 뽑아야 하는데, 후보자인 순태(조우진)와 강표(정경호)는 모두 보스가 되기 싫다며 발버둥친다. 1인자 자리를 두고 혈투를 벌이는 조폭영화의 클리셰를 비튼 것이다. <보스>의 2인자들은 서로 1인자 자리를 양보하려 한다.
이유는 각자의 꿈 때문이다. 중식당 미미루를 운영하는 순태는 이젠 칼을 요리할 때만 쓰고 싶다. 거친 칼부림을 일삼았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딸과 아내를 둔 가장으로서 미미루 운영에 몰두한다. 그에게는 미미루를 프랜차이즈화해 여러 지점을 내고 싶은 꿈이 있다. 특히 조폭 아버지를 뒀다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딸을 보며 순태는 ‘건실한 가장’이 되기로 굳게 결심한다. 아내도 하루가 멀다하고 조폭생활을 청산하라고 압박한다.
문제는 그가 흠잡을 데 없는 차기 보스감이라는 것. 뛰어난 요리실력으로 조직원 여럿을 먹여살린 순태는 조직 내 평판마저 으뜸이다. 그는 그렇게 비자발적으로 ‘보스 선거’에 입후보한다.
조직의 정통성 있는 적자에, 희생정신까지 갖춘 강표(정경호)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강표는 수감생활 중 배운 춤에 꽂혀 조폭 생활을 접고 안무가의 길을 걷고자 한다. 출소하자마자 관련 학과에 입학해 춤을 배우려 하지만, 차기 보스로 점지 당해 순태와 함께 보스 선거 후보가 된다.
반면 판호(박지환)는 유일하게 보스가 되고 싶어 하는 후보인데, 주변의 반응이 영 좋지 않다. 결국 보스 선거는 사실상 순태와 강표의 맞대결이 되는데, 서로 “보스는 네가 하라”며 등떠미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 <보스>. (주)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가장 큰 웃음을 주는 건 태규(이규형)다. 태규는 조직에 위장 잡입한 언더커버 경찰로, 조폭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허술함으로 신분을 들키고 번번이 허탕을 친다. 특히 후반부에서 그의 활약이 이 영화의 장르를 코미디로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보스>는 의리보다는 꿈을 좇는 조폭을 그렸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특히 순태의 ‘요리’, 강표의 ‘춤’은 조폭 출신의 ‘인생 2막’으로 쉽게 그려지지 않는 진로이기도 하다. 연출을 맡은 라희찬 감독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보스를 안 하려고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복잡하지 않게 관객들에게 설득이 되려면, 캐릭터들의 개성과 (각자의) 꿈이 중요했다”고 했다.
영화 초반 캔의 ‘내 생에 봄날은’이 흐르며 2000년대 초반 향수를 자극한다. 이 노래가 옛 노래가 되고 식구파의 세력이 지지부진해졌듯, 이 영화도 이전의 틀에 박힌 조폭물은 ‘옛 것’이 됐음을 선언한다. 차기 보스 자리를 거부하는 인물들 외에도 식구파의 밀수 사업이 중국 이커머스에 밀려 경영난을 겪는 등 외부 환경에도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했다.
하지만 여성 캐릭터의 활용은 여전히 아쉽다. 황우슬혜가 연기한 지영, 정유진이 연기한 연임 역은 각각 순태와 강표 옆에 자리할 뿐 그 자체로서 존재감을 확보하진 않는다. 순태, 강표, 판호, 태규, 인술(오달수) 등 남성 캐릭터가 전반적으로 극을 이끈다.
<내부자들>(707만명) <서울의 봄>(1312만명) <하얼빈>(491만명) <야당>(337만명) 등을 제작한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이번에 제작·배급·투자를 맡았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와 함께 이번 추석 연휴 극장가의 기대작으로 꼽힌다. 러닝타임 98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