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B-1 비자·ESTA ‘작업’ 허용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인 구금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한·미 상용방문 및 비자 워킹그룹’ 1차 협의가 열리고 있다. 외교부 제공
전문직용 별도 비자 쿼터 마련 등
근본 대책은 장기적 과제로 남아
한·미 양국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대미 투자 기업들의 경우 단기상용(B-1) 비자와 전자여행허가(ESTA)로도 해외 구매 장비의 설치·점검·보수가 가능하다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양국 비자 문제에 대한 단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9월4일 미 조지아주에서 이민당국의 대규모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가 발생한 지 26일 만이다. 다만 한국 기업을 위한 별도의 비자 카테고리 신설 등 근본적인 제도 개선은 과제로 남았다.
한·미는 이날 미국 워싱턴에서 미국 비자제도 개선을 위한 첫 워킹그룹 회의를 열고 대미 투자 과정에서 수반되는 해외 구매 장비의 설치·점검·보수 활동 수행에 B-1 비자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외교부는 “ESTA로도 B-1 비자 소지자와 동일한 활동이 가능하다고 했다”며 “미국 측은 이러한 요지의 자료(팩트시트)를 조만간 관련 대외 창구를 통해 공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미국 조지아주에서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노동자들 대부분은 ESTA와 B-1 비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와 구금 한국인들이 소속된 현대엔지니어링·LG에너지솔루션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당시 체포·구금된 노동자 317명 가운데 170명(53.6%)은 ESTA를 보유했고, 146명은 B-1과 관광통과(B-2) 비자 소지자였다.
이에 따라 이번 한·미 간 회의 결과는 회색지대에 있다고 평가됐던 B-1 비자와 ESTA를 통한 기업 활동의 해석을 한국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낸 것으로 풀이된다. 구금 사태 후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구체적 성과가 나온 것은 사태 직후부터 비자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한국 정부의 노력과 현지 공장 건설 정상화를 바라는 미 당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미국의 비자제도를 바꾸는 근본 대책은 장기적인 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호주가 2004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별도 입법을 통해 매년 1만500개의 전문직 비자(E-3) 쿼터를 확보한 점에 주목해 한국인에 대해서도 유사한 입법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싱가포르, 뉴질랜드, 캐나다 등에 대해 특별비자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미 의회에서 2013년부터 매년 1만5000개의 비자를 한국 전문직 인력에게 배정하는 내용을 담은 ‘한국동반자법’이 꾸준히 발의됐지만 기간 만료로 번번이 폐기됐다. 미 의원들이 자국 내 여론을 감안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탓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이번 워킹그룹 논의에서도 “현실적인 입법 제약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과제”라고 밝혔다. 미국 입법부가 관여하는 사항인 만큼 한·미 행정부 간 워킹그룹에서 논의하는 데 한계도 있다.
정부는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가 미국 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미국인 일자리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향후 워킹그룹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