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곰, 공룡, 독수리, 마법사, 쓱, 영웅 군단, 줄무늬, 푸른 피, 그리고 호랑이. 얼핏 무관해 보이는 이 단어들이 하나로 모여 만들어내는 세계가 있다. 모르는 이들에겐 이상한 암호명 나열처럼 보이겠지만 아는 이들에겐 곧장 도파민이 솟구치는 신호, 프로야구 이야기다.
지역 간 갈등과 분열을 경계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는 다른 맥락으로 프로야구는 지역 기반의 확고한 ‘연고 문화’를 바탕으로 몸집을 키웠다. 부산은 롯데, 호남은 기아, 충청은 한화처럼 실로 오랫동안 출신지에 따라 응원 팀이 정해졌고, 그 소속감과 연대가 야구 팬덤을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었다.
푸른 피로 태어났지만 줄무늬가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1994년 야구를 접한 까닭에 지금까지 줄무늬로 살고 있는 나는 꽤 자주 ‘왜?’라는 되물음과 함께 ‘배신자’라는 눈총을 받았다. 참고로 야구 팬덤에서 푸른 피는 대구 연고의 삼성 라이온즈, 줄무늬는 서울 연고의 LG 트윈스를 가리킨다.
여전히 출신지 팀을 응원하는 비중이 높지만 근래 프로야구가 1000만 관중 시대를 열어젖히며 취향, 선수, 응원문화 등 팀 선택의 기준이 확장된 것을 체감한다. 이젠 적진으로 향하는 원정 팬뿐 아니라, 응원 팀 홈구장을 찾아 기꺼이 ‘떠나는’ 팬들도 많다. 덕분에 평소 기차역과 터미널에서 유니폼 차림의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한다. 들뜬 마음으로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열정이 과열되면서 경쟁의식이 적대감으로 번지는 순간들도 있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상대 팀과 지역을 빗댄 조롱과 비하가 난무한다. “많은 사람들은 아주 쉽사리 자기의 동심을 잃어버리고 알지 못하는 사이, 한 사람의 스크루지가 되어버린다.” 전혜린이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에 남긴 이 문장을 댓글로 달면 어떤 반응이 뒤따를지 짐작만으로도 씁쓸해진다.
지난달 울산의 동네서점 책빵자크르에서 열린 <야구×인생×자이언츠> 북토크에서 한 독자가 야구장에서 있었던 불편한 경험을 되짚으며 저자에게 “팬과 편의 차이가 뭘까요?” 하고 물었다. 나 역시 그 차이가 뭘까 생각하다가 이내 이런 질문을 품고 대화를 나누는 ‘덕질’은 얼마나 건강한가로 생각이 흘렀다. 결국 흙탕물을 맑히려면 맑은 물을 더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 야구장에는 경쟁과 승부를 넘어서는 낭만이 있다. 야구는 이닝마다 공백이 있고 득점도 많아 응원 자체가 경기와 함께 호흡하며 축제처럼 퍼져나간다. 응원 팀이 달라도 옆자리에 앉아 맥주잔을 부딪치고, 상대 팀 응원가에도 어깨를 들썩이는 풍경이 자연스럽다. 상대가 너무 잘해서 저도 모르게 뱉게 되는 ‘욕’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나름의 미덕도 발휘되는 곳이 바로 야구장이다. 탄탄해진 팬덤 덕에 마케팅 상품과 스티커 수집도 인기인데 웃돈 거래 같은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거 제가 뽑은 스티커인데, 드릴까요?” 하고 상대 팬에게 나누어주는 이들도 적지 않다.
멋진 경기력에 박수를 보내고, 함께 박자를 타며, 작은 나눔을 실천하는 현장. 지역·세대·이념 갈등이 첨예한 시대에 프로야구는 ‘다름’을 넘어서는 예행연습의 공간이 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 프로야구가 가진 특별한 힘이고, 이 힘은 단순한 인기를 넘어 지역의 미래를 움직일 자원으로 충분한 잠재력을 보여준다.
아쉬운 것은 대다수의 연고지가 이미 팬들이 만들어낸 열기와 수입의 과실을 누리고 있지만, 팬들을 위한 환대와 인프라 개선에는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는 한 야구장에서 다시 일어나선 안 될 안타까운 인명 사고도 있었다. 해당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연고지가 달콤한 것만 취하고, 불편한 과제는 뒤로 미뤄오지 않았는지 묻게 된다.
순위 경쟁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야구 팬덤을 어떻게 지역의 미래로 연결할 것인가 고민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야구 팬덤을 지역 브랜딩 자원으로 삼고 책임 있는 투자를 시작한다면 그 파급 효과는 훨씬 커질 것이다. 광역시도 소멸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은 시절, 뒷짐을 풀고 빠르게 움직이는 쪽이 ‘승자’가 될 것이라 귀띔하고 싶다.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