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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고 두드리기

입력 2025.10.01 22:29

수정 2025.10.0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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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를 쓰는 일보다 그것을 고쳐 쓰는 일이 더 어렵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나는 원고 작업을 할 때면, 퇴고(推敲)의 늪에 갇혔다고 느끼곤 한다. 고쳐쓰기는 말 그대로 늪이다. 정해진 끝이 없기 때문이다. 아주 약간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한 글자 바꿔놓고 뉘앙스의 차이를 곰곰 비교하면서 종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글은 자꾸 보다 보면 너무 익숙해져서 수정하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낭독하기 어려운 부분은 리듬감을 살려 다시 가다듬는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말처럼, 글이란 완성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마감 기한이 없었다면 내가 늘어놓은 글자들에 여태 붙들려 있었을 게 분명하다.

한데 내 선에서 단념하여 송고해 버린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출판사로 전달된 다음에는 편집자 선생님들이 수정 표시를 빼곡히 채운 교정지가 넘어온다. 문법적 오류가 있다기보다는 여러 시선에서 더 나은 문장, 배치 등을 고민하면서 이리저리 바꿔보자는 의견들이 오간다. “이 부분은 고쳐주신 대로 반영해 주세요” “이건 이런 의도가 있어서 남기고 싶습니다” 등의 메모를 달아 다시 편집자님께 보낸다.

매 글이 퇴고를 거듭하면서 깎여나가 제 모습을 찾아가는 조각품 같다. 원래 썼던 문장으로 되돌렸다가 또 어떤 글자는 아예 지워버리기도 한다. 멀리 떨어진 단어끼리 이어 붙여도 보고, 어색하다 싶은 단어들은 혀끝에 두고 종일 굴려본다. 이런 번거로운 일을 자청해서 반복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사소한 어감 하나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했나, 허무해지기도 한다. 아마 나보다 성실한 작가들은 퇴고에 더 오랜 시간을 쓰고 있을 것이다.

‘퇴고’라는 말은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일화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가도는 말을 타고 가다가 시 한 수를 짓게 된다. 부분만 발췌해 옮기자면 이러하다. 새는 연못가의 나무에 깃들고(鳥宿池邊樹), 스님이 달 아래 문을 두드리더라(僧敲月下門). 가도는 문을 두드린다는 뜻으로 ‘敲(고)’를 쓸지, 문을 민다는 뜻의 ‘推(퇴)’를 쓸지 고민에 잠긴다. 그 고민의 전말을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해 보자면 아마 이러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 않았을까 한다.

문을 두드린다고 표현하는 경우, 문 앞에 서서 어딘가로 들어가려 기척을 내는 모습이 더욱 생생해진다. 하나, ‘宿’이 ‘잠자다’라는 뜻을 지녔으므로 앞 구절에서 새들이 나무에서 자고 있다고 해석한다면, 그 적막을 깨지 않고 문을 열기 위해 스님이 문을 미는 편이 더 적절하다. 두 글자 사이에서 몹시 고심하던 가도는 행차하던 한유(韓愈)를 마주치게 되는데, 이때 한유는 문을 두드린다고 쓰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한다. 이후 고쳐 쓴다는 의미로 ‘퇴고’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퇴고란 그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행위를 아울러 지칭한다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고치고 다듬는 일이 글쓰기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잘 쓴다고 자부하지는 못하지만, 나의 경우 언제나 말보다는 글이 편하다. 말은 내뱉고 나면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성미가 급한 나는 늘 빨리 말하려다 실수를 해버린다. 주어와 서술어는 어긋나고 말은 꼬이기 일쑤다. 말과 다르게, 글은 늘 기다려준다. 어제 썼던 삐뚤빼뚤한 문장을 충분히 다잡을 수 있도록. 저번 주에 했던 설익은 생각이 좀 더 깊어졌다면, 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나는 글 속에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언어는 세계를 보는 프레임이자 쓰는 이의 관점을 담는 그릇이므로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이런 문장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어떤 단어가 글의 분위기에 더 어울릴까, 오늘도 고민을 거듭한다. 내가 쓴 말들을 밀고 또 두드리면서.

성현아 문학평론가

성현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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