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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의 발버둥, ‘제국의 쇠락’을 실토하다

입력 2025.10.02 21:31

수정 2025.10.0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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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전 이맘때 펼쳐진 서울 올림픽의 어느 희한한 광경이 요사이 불현듯 떠올랐다. 때는 1988년 9월28일 잠실체육관 농구경기장. 남자농구 준결승전에서 마침내 미국과 소련이 맞붙었다. 82 대 76으로 소련의 승리.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었다. 마치 사전에 짜기라도 한 듯, 소련기까지 든 관중은 ‘적국’ 소련을 더 응원했다. 미국 선수들 플레이에는 야유도 퍼부었다. 냉전에 길들여져온 한국민들에겐 가히 ‘집단적 충격’이었다.

관중이 ‘반미’로 돌변한 이유가 뭘까. 미국의 고압적 자세에 대한 묵은 불만 위에 한국 시장 개방 압박 등의 정치·경제적 백그라운드가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서울 올림픽은 수십년 얼어붙은 친미·반소 냉전 구도에 균열을 가져온 극적 이벤트가 되고 말았다.

도널드 트럼프 치하의 조지아 구금 사태는 관세협상을 노린 도발이겠지만, 분명히 ‘도’를 넘었다. 일제 때나 나왔을 법한 쇠사슬로 손발을 결박한 행태는 집단 트라우마로서 한·미관계 역사에 아로새겨질 것이다.

우린 이제 ‘어제 같은 친구’가 될 순 없다. 도널드 선생의 바람대로 그냥 거래관계일 뿐.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의 참도를 모르는 장사치 리더에게 예의는 사치다.

도널드의 무도(無道)함은 88올림픽의 추억을 되살려냈다. 미 문화원 점거(1985년 5월) 같은 역사조차 모른 채 자란 MZ세대에게 반미의식을 기어코 심어주지 마라.수십년간 치를 대가는 관세의 몇곱절이 될 것이다.

지난 반세기 미국의 강건함은 어디서 비롯됐는가. 단지 군사력에 의존해서가 아니다. 보편적 합리성에 기반한 민주주의와, 구시대 질서에 도전한 히피나 팝·록의 자유와 저항정신이 그 뿌리 아닌가.

이번 ‘도널드의 발버둥’은 미국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내보인 극적인 장면이다. 최전성기의 정점을 찍고 미국이 내리막길로 들어섰다는 전문가 평가들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미국이 여유가 없고, 다급해져 저렇게 무리수를 둔 게 아닐까.

그동안 막대한 빚(국채)을 떠넘겨서, 달러를 찍어대서, 무력으로 겁박해서 값싸게 소비하며 향유해온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최근 금값 급등세도 이런 배경에서다. 달러 지위를 지키려고 스테이블 코인 같은 꼼수도 부려보지만, ‘카드 돌려막기’는 한계가 있다. 역사의 물줄기를 거스르긴 힘들 테다.

1997년 병장 때인 어느 날, K-16 숙소 복도에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흑인 이등병과 마주쳤다. 그가 순간 “비켜!”라고 소리치더니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며 “F~”까지 날렸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아냈다. 그날부터 난 그자의 문제 삼을 만한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기록했다. 그러고는 얼마 뒤 아침 점호에 대대 특무상사(CSM)에게 서류로 정리해 보고했다. 그 이등병은 부대원 앞에서 공개 비판을 받았다. 이후 그가 내 눈도 맞추지 못하고 피해 다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인을 상대할 때는 절대로 감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 아둔한 자국민들로도 미합중국이 굴러가는 건 철저한 ‘FM사회’인 덕이다. 우선 구금 사태가 왜, 어떤 점에서 문제였는지부터 규정을 끝까지 따져들어 세게 나가야 한다. 트럼프 같은 이들의 특성은 딱 약강강약(弱强强弱)이다. “3500억달러는 선불금”이라는 도널드의 말이 왜 얼토당토않은지 꼬치꼬치 짚는 건 기본이다.

트럼프 현상은 ‘문명의 대전환’을 암시하는 단초일 수 있다. 문해력 저하, 유아사망률 같은 인구 통계를 토대로 소련의 붕괴를 예측했던 프랑스의 역사인류학자 에마뉘엘 토드는 저서 <제국의 몰락>(2001)에서 ‘미국 체제의 해체’를 예고했다.

물론 금 보유량이나 반도체 설계력, 인공지능(AI) 기술력 등 미국의 힘은 아직 막강하다. 그러나 그 강건하던 로마제국도 비단 수입 등에 따른 중국과의 무역수지 적자 누적에 화폐가치 절하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종말을 맞고 말았다. 현재 미국 국가부채가 37조달러(약 5경1200조원)를 넘었다. 연간 이자만 약 1조달러로, 국방비보다 많다.

우리가 지금 당파 싸움에 정력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제일 경계해야 할 건 간, 쓸개 다 빼줄 듯 ‘아메리칸 파이’ 부르며, 성조기나 흔들어대는 짓들이다. 유럽, 중국, 인도, 일본 등 동태를 두루 살펴서 장차 유리한 고지를 짚어놔야 하겠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국제질서의 지각판 자체가 꿈틀대는 중이다. 옛말마따나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말자.”

지금 믿을 건 우리 실력과 금뿐이다.

전병역 경제에디터

전병역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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