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벼는 이제 패는데 올벼는 익어가고/ 밭에 선 허수아비는 낟알 먹는 참새를 쫓는다/ 냇가 근처 논밭에서는 두렁 덮은 모래 걷어내고/ 무너진 두둑 돋우고 거름 주고 밭을 갈고/ 김장할 무와 배추 남보다 먼저 심어 놓고/ 싸리바자 밭을 둘러 사람의 발길을 막고…”
조선 철종 때 김형수가 쓴 ‘농가십이월속시’ 가운데 음력 7월 부분이다. 한반도의 농업 시간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유유히 이어지고 있다. 새봄에 기지개를 켠다. 한여름에 모두 정신없이 땀을 흘린다. 이윽고 수확을 앞두고 한 번 쉬었다가, 가을에 수확한다. 겨울은 갈무리하는 때다. 그러고는 농한기다.
한가위는 북미식 추수감사절이 아니다. 그럴 수가 없다. 한가위는 한반도의 자연과 농업사가 농촌에 선물해 온 백성에게 번진 수확 앞의 휴가다. 수확을 앞두고 숨을 고르는 날이었다. 농사 형편이 이날 쉬기에는 너무 이르다 싶은 지역에서는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에 한가위 못잖게 의례를 베풀고, 쉬고, 먹고, 잔치했다.
한편 농민은 이 휴가를 즐기기 전까지 김장을 바라보며 무와 배추를 심었다. 김형수와 동시대 사람 정학유(1786~1855) 또한 ‘농가월령가’ 음력 7월의 노래에서 김형수와 한가지로 노래했다.
“김장할 무 배추/ 남 먼저 심어 놓고/ 가시울(울타리) 진작 막아/ 서실함(흐지부지 잃어버림)도 없게 하소.”
이제 한가위는 오로지 연휴 덕분에 환영을 받는 시대가 됐다. 그건 그거고, 김장배추 농사가 어디 가지 않는다. 오늘날 한반도 김장용 배추 아주심기의 적기는 중부지방은 8월 하순~9월 상순, 남부지방은 9월 상순~중순이다. 아주심기가 너무 이르면 늦더위 탄 배추 모종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너무 늦으면 찬 바람 맞는 배추 모종이 속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다. 무릇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잘 자란 배추는, 대체로 10월 하순부터 11월 초순 사이에 거둔다. 아울러 운송·매집·경매·도매·소매가 움직인다. 그 사이에 입동이 온다. 입동이 다가오면, 김장을 이어가며 사는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든다. 김장이 온다! 다시, 무릇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배추가 얼기 전, 생생한 부재료와 양념거리를 구할 수 있을 때까지가 김장김치 담그기의 제때이고 시한이다. 한가위 전까지 바쁘게 파종하거나 모종 낸 배추가 이 시간표의 핵심이다. 전에는 대체로 소설(小雪) 전까지는 김장을 마쳤고, 요즘은 12월 초순까지도 김장들을 한다. 그래도 동지(冬至)까지 끄는 법은 없다. 그러라고 오늘도 배추밭이 바쁘다.
영어 잘하는 사람들은 이번 한가위 연휴를 ‘빅 홀리데이스’라 굳이 제1외국어로 부르면서, 그 단수형과 복수형의 구별과 운용에 거침이 없더라만, 그러거나 말거나 연휴의 배추밭은 배추 돌보는 노동으로 바쁠 테다. 그러고 보니 ‘아주심기’가 한국인 다수에게 어려운 말일 수도 있겠다. 일반 사전에는 바로 나오지 않는다. 한자어로는 ‘정식(定植)’으로 쓰는 농업 용어다. 기른 모종을 제 밭에, 제대로 심는 일이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