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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빼고 싶은 나, 처방 장사하는 의술…욕망을 파고들다

입력 2025.10.05 08:00

내 몸 관리의 외주화 - (상) 기꺼이 환자가 될게요

[창간 79주년 기획]쉽게 빼고 싶은 나, 처방 장사하는 의술…욕망을 파고들다

겉모습도 경쟁인 시대…“일종의 투자”
‘비만치료제’ 위고비·마운자로 선풍적
약물로 호르몬 작용 거리낌 없이 대체

‘비만 유병률’ 남성 훨씬 심각하지만
삭센다·위고비 처방은 71.5%가 여성

정상체중도 더 빼기 위해 ‘환자’ 자처
BMI 30㎏/㎡ 이상 등 기준 엄격한데
다수 병원, 환자 말만 듣고 ‘끄덕끄덕’

‘쌍둥이 약’ 당뇨치료제 반응은 미온적
“약값 너무 비싸”…건보 급여 적용돼야

“일종의 투자라고 볼 수 있잖아요. 면접장 들어가서 쫄지 않으려면.”

대학생 A씨(24)는 한 손에 비만치료제가 담긴 보랭가방을 들고 약국을 나서던 길이었다.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5가의 약국거리에서 만난 그는 졸업 전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취업 준비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인턴 면접에서도 줄줄이 떨어진 경험이 있던 A씨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외모도 당락을 좌우한다는 얘기와 함께 실제 ‘위고비’로 체중 감량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후기도 접했다. 그는 “사실 BMI(체질량지수)는 24(㎏/㎡)인데, 병원에선 별 얘기 없이 처방해주고 주사 맞는 방법만 알려줬다”면서 “솔직히 너무 기대가 돼서 집에 가서 얼른 주사를 맞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국내 판매를 시작한 위고비에 이어 지난 8월에는 마운자로까지 병원과 약국에 풀리면서 비만치료제 시장 경쟁이 더욱 본격화되고 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 자료를 보면, 지난해 10월 국내에 출시된 위고비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처방전 수가 지난 1월 2만2051건에서 6월 8만4848건으로 수직상승했다.

[창간 79주년 기획]쉽게 빼고 싶은 나, 처방 장사하는 의술…욕망을 파고들다

위고비 등은 국내 상륙 전부터 미국·덴마크·독일·일본 등에서 체중 감소 효과는 높고 부작용은 심각하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져 효능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된 상태였다. 비슷한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 계열의 주사형 약제 삭센다가 이미 출시된 바 있지만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반면,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투약 횟수를 주 1회로 줄인 점도 인기 요인이었다.

이들 치료제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GLP-1 성분은 식사 후 장에서 자연히 분비되는 호르몬의 일종이다. 치료제는 해당 호르몬과 유사한 효과를 내면서도 체내에서 분해되는 속도는 늦추는 특성이 있다. 이에 따라 음식 섭취 후 올라간 혈당을 흡수시키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한편 음식물이 위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려 적은 식사량으로도 뇌의 식욕중추에서 포만감을 느끼게 하고 식욕은 감소시킨다. 인체가 스스로 수행해왔던 작용을 주사 한 방으로 대신하는 ‘외주화’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신체 관리의 외주화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이들 약의 처방 기준은 체질량지수 30㎏/㎡ 이상이거나, 27㎏/㎡ 이상이면서 고혈압·당뇨병·이상지질혈증·지방간질환·폐쇄수면무호흡 등 비만 관련 질환이 동반된 경우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A씨처럼 체질량지수가 기준에 못 미치는 경우에도 스스로 비만 환자를 자처해 ‘셀프 진단’을 내리면 대부분의 병의원에서 확인 없이 처방이 이뤄지는 형편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의료행위에 속하는 주사 역시 자칭 환자가 스스로 한다. 진단부터 투약까지 의사가 환자에게 판단을 일임하는 또 다른 외주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물론 주사형 약제를 환자가 자가 투약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치료제보다 획기적으로 부작용 위험을 낮춰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의료기관과 약국의 투약 지도가 형식적인 실정을 볼 때 흔히 ‘오프라벨’이라 부르는 기준 외 사용 시의 부작용 위험을 간과하긴 어렵다. 실제로 위고비는 주요 성분의 함량에 따라 단계적으로 저용량부터 고용량까지 투약 강도를 점차 높이도록 권고되고 있지만 처음부터 최고 용량 주사제를 처방받는 경우가 많아 고용량일수록 품귀현상까지 빚고 있다.

비만치료제로서의 GLP-1 계열 약물의 매출이 상승하는 것과 달리 ‘쌍둥이 약’이라 볼 수 있는 같은 성분의 당뇨치료제는 시장 반응이 미온적이다. 이들 치료제는 개발 초기 당뇨병 치료 목적의 연구 진행 과정에서 혈당 조절 외에 체중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나면서 서로 다른 제품명으로 각각 출시됐다. 삭센다가 비만치료제로 미국에서 품목허가를 받기 전 같은 리라글루티드 성분의 빅토자가 먼저 승인을 받았고, 이를 개량한 세마글루티드 성분의 오젬픽과 위고비가 각각 당뇨·비만약으로 나왔다. 하지만 빅토자와 오젬픽의 처방 규모는 위고비에 크게 못 미쳤다.직장인 B씨는 “30대 들어서면서 직장 스트레스를 퇴근 후 야식과 술로 풀어서인지 살이 급격하게 쪘고 당뇨까지 왔으니 오젬픽을 쓰면 몸무게도 줄일 수 있단 말에 혹하긴 했다”며 “그래도 병원비에 다른 약값까지 들어가는 상황에서 비싼 약을 먹으면서까지 살을 빼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GLP-1 치료제를 찾는 환자 대부분이 체중 감량 목적으로만 쏠리는 이유로 성별에 따라 외모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다른 한국의 문화도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비만 여부와 무관하게 여성은 적잖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살을 빼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반면 남성은 이런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삭센다와 위고비 투약은 71.5%가 여성, 남성은 28.5%에 그쳐 절대적으로 여성들에게 쏠려 있었다.

대한비만학회가 지난 9월 발간한 ‘2025 비만 팩트시트’를 보면 2014~2023년 국내 성인 중 남성 비만 유병률은 38.8%에서 49.8%로 크게 상승한 반면 여성 비만율은 23.7%에서 27.5%로 소폭 오르는 데 그쳤다.

현재 비만 정도가 심하지 않은 여성을 중심으로 처방되는 비만치료제가 실은 당뇨병·대사질환이 있으면서 비만 문제도 경험하는 청장년층 남성에게 더 필요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셈이다. 최성희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외국 연구자들과 얘기하다 보면 한국에선 왜 모델처럼 날씬한 사람이 위고비를 맞고 있냐고 묻는다”면서 “정작 당뇨병이 있고 체질량지수가 높아 꼭 처방을 하고 싶은 환자들은 역설적으로 너무 바쁘고 돈도 없어 적어도 반 이상은 처방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한비만학회와 대한당뇨병학회 등에서는 불균형한 처방 구도를 조정하기 위해서라도 고도비만과 당뇨병 환자에게는 해당 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준혁 노원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미국·영국·일본 등 해외 주요국은 비만을 만성질환으로 명문화하고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등 적극적인 치료 지원에 나서고 있다”며 “국내에선 비만대사수술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급여로 남아 환자 부담이 막대하고 국제적 흐름에도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개인의 형편에 따라 치료제의 필요성과 실제 활용이 어긋나는 불일치 문제는 앞으로 건강 관리를 외주화하는 추세가 가팔라지면서 심각해질 수 있다. 이미 해외에선 비만 치료의 판도를 바꾼 GLP-1 주사형 치료제를 간편하게 대체할 수 있는 먹는 약 출시가 임박해 있고, 체중을 줄이는 과정에서 체지방만큼이나 근육량 또한 줄어드는 문제를 덜 수 있는 근감소증 치료제 또한 국내외에서 연구 중이기 때문이다.

조병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는 “사회가 경쟁 지향적으로 되다 보니 약을 남용해서라도 앞서나갈 수 있다면 된다는 인식이 문제로 받아들여지지조차 못하는 상황부터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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