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보유국 지위 위한 노력의 일환’ 풀이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 가능성 차단
북·미 대화 재개가 돌파구···APEC 주목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대화하고 있다. 가운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왜 나타났을까. 또 그 해법은 무엇일까. 미국과 협상을 통해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북한은 비핵화를 원하는 남한을 배제하는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정부는 북·미 대화가 열리면 남북 대화 공간도 열릴 수 있다고 보지만, 아직 구체화된 계획은 없어 보인다.
남북은 국제법상 두 국가다. 1991년 9월 유엔(UN) 동시 가입이 계기가 됐다. UN에는 ‘국가’만 가입할 수 있다. 당시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은 “남북 단일 의석”으로 UN 가입을 주장했다. 두 국가를 만들지 말자는 이유에서다. 반면 남한은 별도로 가입하되, 남북이 ‘특수관계’임을 공동으로 선언하자고 제안했다. 합의 결과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표됐다. 여기엔 남북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합의가 담겼다.
북한은 2023년 12월 이 합의를 깼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흡수통일”을 하려는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젠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로써 2000년 6·15선언, 2007년 10·4 선언, 2018년 9·19선언 등 그간 남북 합의는 모두 무효가 됐다. 김 위원장은 9·19 선언을 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시기적으로 ‘적대적 두 국가’론 제기는 윤석열 정부 때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2022년 4월 당시 퇴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과 친서를 주고받으며 우의를 확인했다. 그해 5월 대북 적대시 정책을 펼친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그해 8월 남한을 향해 “제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 했고, 이듬해 6월 김 위원장은 남한을 ‘남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부르며 두 국가 선언을 예고했다.
‘적대적 두 국가’ 주장은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비핵화를 원하는 남한과 상대하는 것은 득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 무력 정책 법령’을 채택하며 “핵 포기, 비핵화란 없(다)”고 밝혔고, 그 이후 두 국가를 선언했다. 앞서 북한은 핵 무력의 성숙도에 따라 대남 전략을 바꾼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를 줄곧 비난하다가 2017년 11월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2018년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대화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은 흡수통일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노력으로도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남한에 대해서 “어느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될 통일을 우리가 왜 하겠느냐”며 “상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거론한 동결·축소·비핵화라는 북핵 ‘3단계 해법’을 언급하며 “이런 적대국과 통일을 논한다는 것은 완전한 집착”이라고도 말했다.
해법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적대적 두 국가를 ‘평화적 두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화해·협력 단계→남북 연합 단계→통일국가 완성 단계’라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중 남북 연합 단계가 “평화적 두 국가 체제를 의미한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그 선행 조건인 화해·협력을 이룰 방법은 현재 없어 보인다.
북한과 대화를 열 수 있는 공간은 북·미 대화 재개뿐이다. 이 때문에 정부도 “대화의 촉진자 역할”을 적극 수행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이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그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과의 관계는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며 “지금 막혀있는 길은 언제든 다시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