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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만나는 붓다

입력 2025.10.09 20:55

수정 2025.10.0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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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낭송을 한다. 상반기에는 <주역>을, 요즘은 <불경>을 읽고 있다. 발심한 친구들이 새벽 정해진 시간에 온라인으로 만나 40분 정도 한 단락씩 돌아가며 낭송한다. 설명도 토론도 없이 오로지 낭송뿐이다. 그런데도 이 시간은 소리의 리듬과 공명이 텍스트 이해를 넘어 타자에게 감응하는 수행, 몸과 마음이 함께 깨어나는 리추얼의 시간이 된다.

그렇다고 텍스트가 주는 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3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계엄·탄핵 정국에서 읽은 <주역>은 64괘가 담고 있는 흥망성쇠의 엄정한 순환과 극에 달하면 반드시 변한다는 ‘궁즉변(窮則變)’의 메시지로 평정심을 되찾게 했다.

요즘 읽는 <불경>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에는 붓다가 기원전 6세기 북인도의 수많은 제자백가 중 한 명에 불과했다는 점, 그리고 그의 첫 제자는 불과 다섯 명이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위대한 불교 사상은 서른다섯 살의 젊은 리더와 그의 비전에 감응한 다섯 명, 이렇게 여섯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부처님 전기가 대부분 율장(律藏)에서 편집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율장하면 엄격한 계율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초기 승가 공동체 안의 구체적 사건 기록이었다. 병든 동료를 돌보지 않았을 때, 질투로 다투었을 때, 외부에서 추앙하거나 멸시할 때, 부처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했는가, 율장은 그 ‘판례집’이었다.

일찍이 피에르 아도는 고대철학이란 사변이 아니라 삶의 양식이었다고 말한다. 즉 고대철학은 스승과 제자로 구성된 생활공동체 속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단련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서양만의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동아시아 최고의 고전인 <논어> 역시 깐깐한 스승과 똘똘한 제자가 “어떻게 해야 인간답게(仁) 살 수 있을까”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토론했던 문답의 기록이니 말이다.

내가 만난 율장 속 붓다도 그러했다. 설법은 늘 보시하라, 즉 가진 것을 나눠라와 계를 지켜라, 그러니까 간결하고 청빈하게 살아라로부터 시작한다. 그다음 감각적 욕망에 휘둘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서야 마지막으로 ‘고집멸도’라는 그 심오한 연기법을 설파한다. ‘사는 법’ 위에서만 ‘진리의 법’은 피어난다.

하지만 사는 법은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다. 초기 승가 공동체는 버려진 천을 기워 만든 분소의(糞掃衣)를 입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재가자들이 보시하는 옷을 허용했다. 더 많은 이들과 결속했겠지만, 초기의 견결함은 다소 후퇴했을 것이다. 데바닷타의 반역은 바로 그 경계에서 일어난 역설이었다. 붓다의 사촌이자 출가 제자였던 그는 승가의 세속화를 비난하고, 엄격한 고행을 주장하며 공동체의 분열을 일으켰다.

내가 속한 인문학공동체도 이제 17년이 되었다. 처음부터 공부는 구원을 향한 정진이라 믿었고, 그 안에서 우리 나름의 생태적이고 아나키적인 삶의 양태를 형성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대 차이를 비롯해 모든 것이 삐걱댄다. 공동체 식탁을 차릴 것인가, 에세이를 쓸 것인가, 연대투쟁에 나갈 것인가 같은, 예전에는 이심전심으로 소통되던 것들이 지금은 서로의 신경을 거스르는 이슈가 되었다. 나는 우리에게 여전히 ‘공통적인 것’이 남아 있는지 의심한다. 우리가 다시 승가처럼 ‘잘 사는 법’을 함께 조율해 나가는 인문학-수행 결사체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붓다공동체가 완벽한 이상향이 아니라, 늘 갈등 속에 공동체의 일기를 매번 다시 써나갔다는 데에서 가능성을 찾는다. 그리고 고타마와 다섯 명의 초기 ‘붓다밴드’를 떠올리면서 수행은 깨달음을 향한 일직선의 길이 아니라, 둥근 원과 같아서, 언제 어디서든 재발심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붓다 초기 설법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니까야’ 낭송을 계속한다. ‘니까야’가 원래 문서가 아닌 소리 경전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나는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부처님과 소리로 공명하는 자리에서 다시 발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위로가 된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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