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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도 등급이 있다

입력 2025.10.09 20:57

수정 2025.10.0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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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다가 가장 반가운 순간은 애초에 계획하지 않던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르면서 예정에 없던 인물을 만날 때다. 작가가 예상하지 못한 소설은 좋은 소설이 될 확률이 높은데, 소설이 소설을 쓰는 작가의 시야를 넘어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바다 오염을 다루고 싶어서 시작한 원고에 애초 주인공쯤으로 생각해둔 인물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고래와 나>에 인터뷰이로 참여한 김민수씨다. 그는 동료들에게 폭행을 당해가면서 선상의 쓰레기 투기를 영상에 담아 세상에 고발했다.

‘김민수’를 쓰는데, 인도네시아인 ‘우당’이 나타났다. 그는 최희철의 에세이 <포클랜드 어장 가는 길>에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등장했는데,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화자의 자리를 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돈을 벌러 왔다가 기계처럼 일만 하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일하다 병들고, 목숨을 잃고, 배상은커녕 사과조차 받지 못한 채 쫓겨나는 이들이…

배 위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배에 옷을 묶어 바닷물로 빨래를 하기도 할 정도로 물이 귀한 어선에서, 한국인 선원들은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마시지만 외국인 선원들은 조수기 물을 마신다. 조수기 물을 화분에 주면 영양가가 없어서 식물이 말라 죽는다고 한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는 계획에 없던 외국인 노동자가 자꾸만 나타난다. 봉제 노동에 관한 소설을 쓰다가 쑤안을 만났고, 농장 돼지에 관한 소설을 쓸 때는 팜을 만났다. 쑤안은 봉제 기술을 익히기도 전에 쪽방에서 화재로 목숨을 잃었고, 팜은 오물투성이인 돼지농장을 청소하다가 직업을 잃었다. 가혹하고 열악한 노동 현장으로 소설이 찾아갈 때마다 한국인은 거기에 없다.

갑판 위에서 죽어가는 생선에게도 차별은 반복됐다. 고급 식재료인 눈다랑어는 낚자마자 신속하게 처리해 급속냉동실에 보관하지만, 덤으로 어망에 걸려든 치어들은 갑판 위에서 천천히 죽게 놔둔다. 죽음에도 등급이 있다. 비싸게 팔리면 재빨리 죽여서 품질을 높이고, 돈이 안 되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뒀다가 바다에 버린다.

생선에 등급을 매기듯 사람에게도 등급을 매긴다. 그 등급을 높이려 한평생 발버둥치는 게 우리들의 삶 아닌가. 그런데 그 등급조차 매겨지지 않는 삶이, 죽음조차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갑판 위의 치어처럼 스스로 죽게 버려진 사람들이 가자에, 팔레스타인에 있다.

그들이 살아 있다는 걸,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려고 500여명의 세계 시민이 구호선에 올랐다. 이스라엘은 이들을 체포했다. 이스라엘군 투입과 이동으로 봉쇄가 약해지는 틈을 타, 가자에는 잠시 해방의 순간이 열렸다. 굶주린 팔레스타인인들이 바다에서 생선을 잡을 수 있게 된 거다. 그물에 걸려든 생선으로 모처럼 허기를 때웠을 팔레스타인인 소식과 치어는 돈이 안 돼 갑판 위에서 죽게 뒀다 내버린다는 원양어선 소식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휘청거린다.

올 추석에는 계속 비가 내렸다. 삶이 삶다워지고 죽음은 죽음일 수 있는 세상이 오는 날을 기다리며 잠시 숨을 멈춘다. 중심을 잡으려고 비틀거린다.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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